저무는 하루가 아쉽지 않은 이유

by 글담



“어, 문 닫았네.”

모처럼 만난 지인과 함께 점 찍어둔 식당을 가니 쉬는 날이랍니다.

발걸음을 돌리기가 아쉬웠지만 또 다른 단골 식당이 있어 얼른 자리를 옮깁니다.

“오랜만에 본 학교는 어땠어?”

“아직 가을이, 단풍이 오지 않았더라.”

바람은 이미 가을인데, 나무는 잎을 떨쳐내지 않고 물과 양분을 나누어 주나 봅니다.

하늘은 벌써 가을인데, 구름은 색이 바래지지 않고 빛과 그늘을 넉넉히 채워 줍니다.


얼마 전에 서울로를 걷다가 뭉게구름이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작은 들꽃 한송이에도 걸음을 멈추는 마당에 광활한 가을 하늘에 주저할 수밖에요.

하늘 구경 삼매경에 빠졌을 때는 혼자 돌아다녔지만,

오늘은 한동안 보지 못했던 지인과 이곳저곳 돌아다닙니다.

아직 휴일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나른한 공기가 도심을 감싸는 듯하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평소와는 달리 여유롭습니다.

해야 할 게 쌓인 탓에 괜히 아침부터 번잡한 마음을 달랠 길 없었는데,

무심한 도심의 풍경에 어느덧 아무런 파장이 없는 수면처럼 고요해집니다.


지인을 떠나 보내고 다시 카페로 돌아와 일을 하려다 책부터 펼칩니다.

아직 일할 마음은 없는 듯하네요.

책에서는 세월에 풍화되어 사라져서는 안 될 기억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쟁의 가해와 피해,

여전히 감추고 외면하는 전쟁의 상흔.

그래서 여지껏 상처를 안고 살아야 하는 삶은 현실입니다.

그 기억을 그저 과거라고,

지나간 일이라고 잊으라 한다는 것은 가혹한 처사입니다.

용서도 기억을 끄집어내고,

그 기억을 보듬어 안을 때 가능합니다.

기억을 지우라고 하면서 용서를 하라니요.

이런 말은 또 한 번의 가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한 하늘을 보다가 책을 읽으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런데도 책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기억해야 하는 일이 고통스럽더라도,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휴일의 마지막 날,

일과 책 읽기와 만남과 멍하니 있는 시간을 오가며 보냅니다.

아직 해가 저물지 않은 시간이 다시 한 번 하늘과 구름을 보며 크게 숨을 들이쉽니다.

오늘 하루가 다가는 게 아쉬워 하지 않고 저녁 노을이 익어가는 광경을 기다립니다.

가을밤의 별을 헤아리는 설렘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