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진에 나온 꽃 어때?”
카페에 들어가 자리에 앉았더니 저만치서 고개 숙인 꽃이 자꾸만 눈길을 끕니다.
고개를 떨군 게 수줍은 모습은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지쳐 시들은 모습이라고 하기에도 왠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잠시 담소를 나누는 자리인데,
어째 다른 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가 쉽지 않네요.
그들의 이야기는 귓등을 타고 흘러가버리고,
꽃은 진한 선홍빛인지 분홍빛인지 햇살에 따라 색이 미묘하게 바뀌며 공간을 지배합니다.
체념이라기보다 관조를 떠올리게 하는 붉은 꽃이 고즈넉하게 피어 있습니다.
“11월 7일이 입동이래.”
눈에 밟히던 꽃을 보고 하루가 지나 찾아간 또 다른 카페는 싸늘합니다.
카페지기가 쌀쌀한 바람에 옷깃을 여민 채 입동을 알립니다.
이미 카페 안의 공기는 차가워 저절로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제 가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어제 가을은 이미 지나갔다고.
아직 단풍잎도 보지 못했는데 가을을 떠나 보내려니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흘러가는 구름만큼이나 시간도 흐르는데.
“예전에도 계절이 바뀔 때 예민했었던가?”
오래 알고 지냈던 한 선배가 가을을 무심히 보내지 못하는 나에게 툭 던진 말입니다.
가을이 되면 왠지 모를 나른한 분위기에 헤어나지 못하는 게 못내 걱정이 되었나 봅니다.
그 가을이 가고 겨울이 오면 따뜻한 온기를 찾아 이리저리 기웃거리니 차라리 낫습니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겨울이 다가올수록
나른한 분위기는 적막한 시공간으로 바뀌지만,
사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 되니까요.
바람이 차갑습니다.
마음이 외롭습니다.
구름은 흘러갑니다.
가을이 떠나갑니다.
사람이 그립습니다.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관둡니다.
나의 그리움이 그의 반가움이 되는지 알 수 없어 주저합니다.
나의 외로움이 그의 적적함을 채울지 알 수 없어 저어합니다.
다시 사진을 꺼내 꽃을 봅니다.
한때 붉고 화사했던 꽃의 절정을 그려 봅니다.
그때 푸른 생명의 절정을 보인 사람들을 떠올립니다.
시간이 그린 그림을 보는 중입니다.
깊어가는 가을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