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또다시, 또다시.

by 글담

“전부 다 쓸쓸하네.”

산책 중에, 혹은 짧은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을 보여줬더니 쓸쓸하다고 합니다.

한가로운 산책과 설렘의 여행이 사진에 투영되지 않았나 봅니다.

보기에 좋아 렌즈를 들이댔을 뿐인데,

어쩌면 그 찰나의 순간에 쓸쓸하게 보인 피사체가 마음에 들어서일지도 모르죠.


산책길이든 여행길이든 깊어가는 가을이 곳곳에 스며 들었습니다.

애틋한 쓸쓸함을 배경으로 한 고상한 한 폭의 그림을 감상하는 듯하네요.

어느새 땅에 떨어진 나뭇잎은 메마른 낙엽이 되어 근원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가을은 회귀의 계절입니다.

봄에 탄생한 생명이 다시 대지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가을은 쓸쓸하기보다 본래의 자리로 조용히 돌아가는 회귀의 시간이지 않을까요.


한밤중에 책을 보다가 무심하게 흐르는 세상의 시간을 가늠합니다.

책을 덮고 사진을 뒤적이며 회귀의 시간을 떠올리다가 세상을 마주한 순간은 경악이었습니다.

사진의 낙엽을 보며 떠올린 회귀의 시간은 금세 악몽으로 바뀌었습니다.

되돌아간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골똘히 생각하던 중,

그 ‘회귀’가 악몽의 그때로 돌아갈 줄이야.

또다시 일어난 어리고 젊은 생명들의 참사는 슬픔과 당혹에 이어 허탈함마저 안깁니다.

굳이 ‘또다시’라고 한 이유는 우리가 이미 겪은 비극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또다시’를 말하는 이유는 비극을 대하는 경박하고 무책임한 태도 때문입니다.


‘또다시’

일은 벌어졌고,

‘또다시’

슬픔과 애도를 비아냥대는 천박함이 고개를 듭니다.

‘또다시’

벌써부터 누군가는 개인의 잘못으로 몰아갑니다.

‘또다시’

어설픈 이들의 어리석음으로 매도합니다.
‘또다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또다시, 또다시, 또다시.


뉴스를 끄고 책을 다시 펼치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황망한 마음은 쉬이 다스려지지 않는데 밤의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갑니다.

여행의 시간은 이어지지만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또다시’를 지울 수는 없습니다.

‘또다시’

한 평론가의 말처럼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슬픔’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부쩍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일이 연이어 벌어지는 시대.

한동안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