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의 꽃잎은 불꽃처럼 흘러내리고

by 글담

날씨가 제법 풀렸습니다.

추운 날씨에 연신 발을 동동 구르며 산책을 다녔는데,

오늘은 맨손을 휙휙 저으며 동네 구석구석을 쏘다녔습니다.

살은 빠지지 않겠지만 머릿속의 찌꺼기를 조금이라도 덜어낸 시간이었네요.


논문 프로포절을 발표하는데,

한 교수님이 이렇게 ‘심도 깊은’ 의견을 주고받는 적이 잘 없는데 하고 웃음을 터뜨립니다.

보통 이렇게 안 하는데 오늘 웬일이냐며 말이죠.

나야 그저 입꼬리만 살짝 올릴 뿐입니다.

얼마나 짚고 넘어갈 게 많았으면 저리도 도움을 주실까 싶어 말을 삼갑니다.

늦깍이 공부가 힘들기도 하지만,

망각과 무관심에 대한 경계심을 일깨우는 고통에 좀 더 힘을 내봅니다.


발표가 끝나고 프로포절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카페에 왔습니다.

오는 내내 다른 원고 작업에 대한 닦달이 날아왔습니다.

음, 이런 날은 그저 조용히 지내면 좋을 텐데.

책 좀 보고 잠시 졸기도 하면서 일을 하려 했건만,

그들은 천리안을 가진 듯합니다.


카페에 오니 새로운 그림들이 이곳저곳 걸려 있습니다.

큰 숙제 하나 마쳤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둘러봅니다.

여기저기 걸린 그림을 보다가 늘 그렇듯 한 그림 앞에 멈춥니다.

그림 볼 줄 모르는 나도 전시를 보다가 유독 손으로 턱을 괴고 쳐다보는 그림이 있습니다.

오늘은 해바라기 그림입니다.

작가는 전시회의 제목을 ‘休‘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쉼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물을 담은 것일까요.


해바라기의 꽃잎은 불꽃처럼 흘러내립니다.

해를 바라보다 뜨거운 열기를 차마 다 담으려 했는데 너무나 뜨거웠을까요?

꽃잎은 불꽃이 되어 일렁입니다.

작가는 이 불꽃의 꽃잎에서 어떤 쉼을 본 것일까요?

일렁이는 불꽃의 꽃잎을 보며 불멍을 하듯이 멍하니 보며 쉬라는 걸까요?

일차원적인 물음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수준이라 혼자 속삭입니다.

그래도 온전히 그림에 빠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 다행입니다.

할 일이 많아도,

써야 할 글이 남아도,

이 순간만큼은 오롯이 내 시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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