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쓰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원고를 쓰는 것은 참 지루합니다. 단행본 한 권을 쓸 때는 지루함과의 싸움이라고도 할 수 있죠. 소위 말하는 ‘삘’을 받아서 쓰는 것도 몇 페이지에 불과합니다. A4 용지로 100페이지 내외를 쓸 때는 ‘삘’로만 부족하죠.
어떻게든 원고를 다 쓰고 나면, 말 그대로 진이 다 빠지고 맙니다. 하얗게 불태운 ‘내일의 조’처럼 팔다리를 늘어뜨리고 말죠. 그러니 지금껏 쓴 글을 보고 싶은 마음이 들까요? 다시 읽으려고 하니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출판사에 넘기자 하고 주려던 찰나에 동료 작가가 글을 보자고 합니다.
동료 작가는 제가 쓴 글을 보더니 인상을 잔뜩 구깁니다. 원고 파일에 온통 붉은 색으로 표시를 해둡니다. 게다가 친절하게 괄호를 치고 왜 이상한지를 적어뒀습니다. 아, 화가 머리끝까지 뻗칩니다.
글을 쓰는 동안 나쁜 버릇이 생겼습니다. 초안을 후다닥 쓰고 글을 동료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그럼 동료가 피드백을 줄 테니 그때 고치면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어이없는 일이 생깁니다. 제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수정부분이 생기는 거죠. 이를테면 문장이 한없이 길어서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곳곳에 비문이 고개를 내밀고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출력해서 봤더라면 그런 실수는 줄어들었을 겁니다. 단지 다시 읽기가 귀찮다는 이유로 하지 않았던 퇴고가 저의 수준을 말해주는 듯했습니다. 맛깔나게 글을 쓰지는 못하더라도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는 제대로 전달했을 텐데 말이죠.
퇴고는 어쩌면 글쓰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퇴고가 없는 글쓰기는 마구 쓴 생각의 나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초고를 쓰는 것보다 퇴고의 과정이 시간이나 노력이 더 든다고 하죠.
<혼불>의 작가 최명희 선생도 일필휘지의 글쓰기를 믿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단 한 번에 글을 완성한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글쓰기 수업이나 모임에 갈 때마다 보는 광경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써온 글을 제가 수정을 요구할 때입니다. 이때 사람들의 표정은 잔뜩 굳어버리거나 벌겋게 달아오르는 분도 있습니다. 글쓰기에서 수정을 하는 퇴고는 당연한데, 사람들의 반응은 이처럼 좋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퇴고의 과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에 했던 글쓰기라고는 일기가 대부분인 경우가 많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일기를 쓰면서 퇴고라는 것을 해봤을까요? 숙제처럼 해야 하니 검사하기 전에 다 쓰는 게 우선이었을 테죠. 이런 식의 글쓰기 경험과 함께 누군가가 자신의 성과물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죠. 평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니 퇴고 과정에서 피드백을 주는 게 저도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닙니다.
퇴고 과정에 있는 분들께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퇴고는 어떤 평가나 지적을 한다기보다 완성도를 향한 과정이라고 말입니다. 퇴고를 하다 보면, 미처 보완하지 못한 내용이나 사례와 인용문을 넣을 부분도 볼 수 있습니다. 이것만 봐도 퇴고가 글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죠.
글을 고치다보면 예상 밖으로 많은 것을 손댈 수 있습니다. 심지어 구성이 변하거나 문단의 위치도 바뀌기도 하죠. 이러한 변화는 좋은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애초에 글을 쓰던 것보다 발전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요.
퇴고를 어렵거나 귀찮은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글은 일단 마구 쓰는 것이 맞습니다. 당장 떠오르는 생각과 내용을 써놔야 하죠. 그렇지만 이렇게 마구 쓴 글을 가지고 끝났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마구 썼으니 고쳐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 내키는 대로 쓰는 게 글쓰기의 시작입니다.
● 많은 사람들이 글의 수정에 대해 인색합니다.
● 사실 초안을 쓰는 것보다 고치는 게 일이 많고 시간이 더 걸립니다.
● 퇴고의 과정이 글쓰기의 깊이와 완성도를 가져다줍니다.
● 퇴고 과정에서 글의 재구성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 재구성의 기준은 흐름의 자연스러움과 가독성입니다.
● 인용이나 사례를 넣으면 재미와 가독성을 높일 수 있습니다.
● 자료를 검색할 때는 키워드의 확장성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