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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함을 품을 수 있는 생각의 시간

by 글담

바삐 움직이다가 어스름 내려앉는 시간에 잠시 멈췄습니다.

뭐가 그리 바쁘냐고 혼잣말을 툭 내뱉고는 해가 지는 쪽을 바라봅니다.

바람이 부는 듯하지만,

나뭇가지는 흔들림이 없는 것 같아 그쪽은 고요한 시공간인가 싶습니다.

하늘도 차츰 색을 바꾸며 늘 그렇듯 하루를 마감하려 합니다.

역시나 나 혼자서 바쁘다고 호들갑을 떨었나 봅니다.


석양을 바라보다가 새벽에 본 시를 곰곰이 떠올립니다.

해석이 안 되어 여러 번 곱씹었지만,

결국 덮고 말았던 시.

그래도 저 하늘을 서서히 붉게 물드는 것처럼 내 마음에 뭔가를 스며들게 하겠죠.

시는 읽는 게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일 텐데,

새벽에 본 시를 제대고 보고 듣고 느꼈는지 모르겠네요.

뭔가 모를 여운,

그 여운이 뭔지 자꾸만 되짚어본다는 어쨌든 시가 마음에 들어왔겠죠.


잠시, 아주 잠시 상념이랄까, 그저 스치는 생각에 빠져드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이 때로 마음의 위안을 줄 때도 있어 아깝지는 않습니다.

더군다나 오늘은 여러 사람을 만나 같은 세상 속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찌 이리 다른지 입을 닫고 귀만 열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노을을 보고 앙상한 나무와 나뭇잎 하나 없는 나뭇가지를 보니,

격한 세상의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는 듯합니다.

잠깐이나마 소음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도 좋을 순간이죠.


소음이라고 하지만,

사실 절박한 생존의 절규마저 소음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 절규를 소음이라고 치부하면서 막말을 하거나,

혹은 귀를 닫아버리곤 하죠.

그들의 말이 곧 이웃의 말이자 나의 말일 수 있을 텐데도 말이죠.


무심한 저녁노을을 보니 그들의 아픔이 짙게 마음에 물들어 갑니다.

소음이라고 할 수 없는 그들의 소리를 잊지 않으려 다시 시를 꺼내 봐야겠습니다.

한 인간의 내면에 아로새겨진 아픔을 이해한다면,

절규의 목소리에 담긴 절박함을 더 품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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