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무겁습니다.
긴 연휴의 후유증은 아닙니다.
너무 오래 쉬지는 못했으니까요.
그럼, 일을 계속해서 오는 피곤함 때문일까요?
온종일 마음이 무거워 일이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일하다가 틈틈이 읽던 책에서 죽비를 맞습니다.
알려면 다가가야 하는데,
“다가갈수록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은 부분이다”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상심하지 말라고 말을 이어갑니다.
“한 번 다가가면 일부를 아는 데 그치지만, 백 번 다가가면 전체가 떠오른다”라면서요.
작가는 거기에 한마디 덧붙입니다.
“오늘 부족하면 내일 채우고 내일 부족하면 모레가 있다.”라고요.
그동안 한 번만 다가선 인생이 아니었는지 뜨끔합니다.
글을 쓸 때도,
글감을 볼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그렇게 한 번만 보고 부분만 알았나 봅니다.
낯선 카페에 가서 등을 오랫동안 바라봅니다.
불빛은 갓에 가려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래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등이라는 사물을 바라보며 어떤 전체를 볼 수 있을까요?
인간이 아닌 사물의 실존을 바라보며 무엇을 떠올렸을까요.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백 번을 봐야 하는데,
이제 한 번을 지긋이 봐놓고선 실존을 말하다니 어이가 없긴 합니다.
단지 등불을 바라보는데,
빛을 가리니 빛이 보이더라는 것밖에는 알 수가 없습니다.
가려진 곳에 빛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가려진 곳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죠.
가려졌다고 하나 그곳도 내가 사는 세상의 일부입니다.
미등록 이주민, 사회적 약자 등의 세상에도 빛은 있습니다.
나 또한 그들과 다를 게 없을 테고요.
백 번을 바라봐야 그들을 알고, 빛을 볼 수 있습니다.
한 번을 보고 모든 것을 봤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겠죠.
저마다 코끼리의 부분만 만지고 제각각 코끼리의 형상을 말하듯,
부분을 전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되겠죠.
여전히 눈을 감은 채 부분을 더듬고 있지만,
타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전체를 볼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