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호한, 그러나 여운이 있는

by 글담

이른 새벽,

잠시 밖을 나와 찬바람으로 얼굴을 세수하고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아직 해는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하늘도 캄캄합니다.

괜히 잠에서 깬 게 억울하기도 하지만,

곧바로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주변을 어슬렁거립니다.


어디선가 쏟아지는 빛이 조명이 되고,

어둑한 하늘은 사진관의 암막 배경이 되어 길게 뻗은 나뭇가지를 비춥니다.

마치 길게 뻗은 팔과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하네요.

가리키는 방향의 끝을 바라보다 다시 눈길을 나뭇가지로 돌립니다.

뭔가 애처롭게 가리키지만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애틋함.

아, 잠에서 깬 줄 알았는데 아직 덜 깼나 봅니다.

별 시답잖은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사실 글을 쓰거나 읽을 때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무언가를 가리키는 듯한데 그 실체가 모호한.

그게 생각의 폭을 깊게 또 넓게 해주는 여운 혹은 여백이라면 모르겠지만,

잔뜩 힘을 주고 쓰면서도 흔히 말하는 통찰이 보이지 않는 글이죠.

어떤 글은 가리키는 방향이 너무나 명확합니다.

가리키는 것을 넘어 가르치려 들죠.

그래서 그 방향대로 가지 않으면 마치 삶의 길을 잃을 듯한 위기를 고조시키곤 한답니다.

그런 글은 자칫 오만과 독선일 수도 있기에 언제부터인가 자제하려 노력합니다.

글과 말에서 단호함이 아닌 독단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을 경계하려고요.


모호한 글쓰기도 좋지 않지만,

독단의 글쓰기도 해롭다고 봅니다.

말도 마찬가지이겠죠.

차라리 모호하지만 상대가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는 글이 좋은 듯합니다.

말도 그래야겠지요.

“그렇지”, “그런 것 같아”, “응”이라는 표현을 어느덧 많이 쓰곤 합니다.

일단 그렇게 반응한 뒤에 한 호흡 쉬고 말하는 것.

생각 좀 하고 말하자는 것이죠.

물론 아직도 발끈한다거나 이렇네, 저렇네 하며 단언하기도 합니다.

제가 성자는 아니니까요.


누군가 말했습니다.

성인이 됐다고 해서 어른이 된 건 아니라고요.

아마도 성인은 물리적인 나이로, 어른은 삶의 연륜으로 구분했을 텐데요.

나는 아직 이 경계에서 오가는 듯합니다.

내 고집을 앞세우고,

내 독선을 드러내고,

내 독단을 주장하는.

그러다가 그때마다 또 한 번 경계하고 반성하는 도돌이 인생입니다.

오늘은 또 어떨지 모르겠네요.

그나마 글 작업하는 카페에 아무도 없어 누군가에게 실수하지 않을 수도.

그나저나 손님이 와야 할 텐데 너무 조용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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