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가을이면 가을이니까요

by 글담

날씨가 풀리면서 일부러 걷거나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녔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거리의 맨 얼굴을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얼굴 표정을 바꾼 거리를 쏘다니고,

다소곳하게 정감 어린 얼굴 그대로 간직한 골목길도 둘러 봅니다.

한동안 찾지 않았던 골목길과 식당을 찾아가면서 잠시 숨을 내쉽니다.

무거운 가방을 내려놓고 무엇이 바뀌고 또 바뀌지 않았는지 살피면서 말이죠.


힘든 세상이다 보니 문을 닫았거나 얼굴이 바뀐 곳도 여러 군데입니다.

마치 시간이 소멸된 듯해 아립니다.

지나간 시간을 그러안아 잠시라도 평온을 얻으려 했건만,

사라진 공간은 기억마저 희미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다 오랫동안 허물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담장과 넝쿨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오르막길을 따라 이어진 시멘트 담장 중간마다 기둥처럼 서 있는 붉은 벽돌 담장.

넝쿨은 세월을 따라 겹겹이 옷이 되어 담장을 감싸 안은 채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보네요.


살짝 몸에 온기를 느낄 만큼 걷고 오르다가 단골 카페에 들렀습니다.

식은 커피마저 맛있어서 찾는 카페.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살짝 음미하고 텅 빈 공간을 마주합니다.

또 혼자만의 공간이자 미안해지는 공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조용히 주인장은 자신의 작업실로 들어가고,

나도 가만히 가방을 풀어 헤칩니다.

책을 펼치다가 마음이 급해 몇 장 읽지도 못하고 노트북을 켭니다.

어지러이 펼쳐진 원고를 다듬고 또 새로이 늘어 놓습니다.

글이 될지 가늠하며 지우고 쓰고 다듬는 노동이 시작되는 시간입니다.


잠이 쏟아집니다.

너무나 이른 새벽, 어쩌면 깊은 밤이라 할 수 있는 시간에 잠에서 깼거든요.

더군다나 날씨마저 따뜻하게 풀렸으니 눈꺼풀의 무게가 천근만근입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이 자꾸만 흘러가니 마냥 드러누울 수도 없네요.

지금 앉은 자리는 드러누워도 좋을 카우치라 슬쩍 기대보기도 합니다.

손님도 없고 주인장은 작업실에 있으니 혼자 이래 보고 저래 보며 노는 셈이죠.


가을 같은 겨울입니다.

갈변한 넝쿨과 붉은 담장, 그리고 골목길의 여운이 그리 느끼게 하나 봅니다.

날씨마저 늦가을의 한낮처럼 포근하니 더 가을을 떠올립니다.

밤 산책도 가을밤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오랜만에 강의나 이야기보다 노래를 들으며 산책을 해봐야겠습니다.

마음이 가을이면 가을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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