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게 보고 얇게 훑는 하루

by 글담

카페에 들러 글을 쓰다가 갑자기 오랜만에 듣는 노랫소리에 고개를 들었습니다.

모니터만 바라보다 고개를 드니 그제야 바깥 풍경이 다가옵니다.

낯선 카페에 들렀다가 자기 취향에 맞는 음악과 공간을 마주하면,

왠지 오늘은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기분이 좋습니다.

피곤에 절어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것을 간신히 붙들던 차에 참으로 반갑습니다.


원래 가려던 카페는 아주 작은 동네 카페입니다.

작은 테이블 서너 개 놓인 그곳은 마침 손님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건물 밖 작은 테라스의 빈자리를 보고 잠시 고민했지만,

날이 풀렸다고 해도 바깥에 한두 시간 앉으려니 엄두가 나지 않았죠.

그 카페를 지나쳐 이어진 길을 따라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목조 가옥을 카페로 만든 듯한 그곳은 제법 외양이 커서 자리가 있을 듯했죠.
따뜻한 실내에 적당한 자리까지 차지하니 기분이 좋군요.

아, 5천 원이 넘는 커피 가격에 흠칫했지만.


창밖에 펼쳐 있는 풍경은 그저 도심의 광경입니다.

높다란 빌딩과 무심히 걸어가는 사람들.

무엇 하나 사색을 즐길 만한 기분은 아니었는지 그걸 바라보는 나도 무심합니다.

창밖 풍경보다 격자로 나뉜 창을 바라봅니다.

쪼개어 바라보니 그저 하늘만 보이기도 합니다.

한순간에 이곳은 도시가 아니라 그저 하늘이 펼쳐진 너른 공간이 됩니다.


가끔은 넓게 보고 깊게 파고드는 게 통찰이라 하지만,

때로는 좁게 보고 얇게 훑어보는 게 낯선 모습을 발견하게 합니다.

오늘은 어쭙잖게 통찰 운운하는 것보다 그저 낯선 광경을 찾은 게 좋네요.

거대한 담론과 역사와 국가가 아닌 좁은 격자 틀 안의 세상.

저곳이 사실 내가 친근하게 여기는 세상일 테죠.

그 세상 안에서 지지고 볶는 인간들과의 유대를 떠올려 봅니다.

아, 계속 저녁식사 자리를 하자던 선배가 생각나는군요.


오늘도 가방 안에 담아둔 것을 하나씩 꺼내 사용합니다.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쓰고요.

이따가 책을 꺼내 읽을 겁니다.

무겁게 가방에다가 꾸역꾸역 집어 넣었으니 억울해서라도 하나씩 꺼내봐야지요.

이렇게 하찮게, 좁게, 얇게 하루를 마감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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