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길어졌습니다.
늦은 오후,
일을 멈추고 잠깐 산책을 나갈 때 이미 땅거미 내려앉아 하루를 일찍 마감하곤 했죠.
이제는 하루를 좀 더 연장해야 하나 봅니다.
일의 시간은 같더라도,
마음의 시간은 일찍 하루를 마감했건만.
층층이 겹겹이 집이 하늘로 쌓인 동네는 길게 솟은 마천루와는 다릅니다.
화려한 빌딩을 볼 때와는 달리,
집과 집 사이의 골목,
집집마다 하나씩 켜지는 불빛,
노을이 서서히 덮어가는 동네.
멀찍이서 바라보는데도 사람 내음이 납니다.
총총걸음으로 가던 발길을 잡을 만한 향수 어린 풍경을 지나칠 수는 없죠.
잠깐이라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토록 긴 시간 동안 변하지 않은 풍경이기에 더욱 그러고 싶었는지도.
쌀쌀하던 날씨에 미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몸을 휘감습니다.
벌써 봄이 오려나, 하고 설레발치는 건 아닙니다.
잠시나마 겨울의 따뜻함이라는 역설의 기분을 느끼고 싶을 뿐입니다.
번뇌라고까지 할 수 없겠지만,
마감에 쫓기는 날 선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죠.
머릿속은 다음 문장과 이어질 맥락으로 가득 차 있어도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매끄러운 연결이 아니라 파편 조각처럼 흩뿌려진 문장과 맥락인지라.
이럴 때는 펜을, 아니 노트북을 덮어야죠.
바깥 바람이라도 쐬면 이상하게 꼬인 매듭이 풀리곤 합니다.
바람이 머릿속의 잡념을 내몰고 가지런히 정돈을 해주나 봅니다.
잡념이 사라지고 다시 담백하게 놓인 백지에 글을 이어갑니다.
아, 다시 일하러 가야겠다며 돌아왔습니다.
겨우 잡은 실마리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읽다가 아쉬워하며 내려 놓았던 소설이 떠오르지만 어쩔 수 없죠.
목구멍이 포도청이니까.
음, 이렇게 말하니 좀 찔리네요.
글 쓰고 먹고사는 게 더러운 짓이 아닐 터인데 굳이 이 표현을 쓰다니.
어휘력이 짧은 탓이겠죠.
이렇다 할 깨달음도,
이렇다 할 통찰력도,
이렇다 할 진일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듯한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밤이 되면 또 밤의 시간이 펼쳐지겠죠.
오랜만에 한갓진 시간을 가지고 싶지만,
글과 싸우는 시간이 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