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걸어도 몸이 데워지지 않습니다.
그나마 바람이 불지 않아 벌벌 떨지는 않네요.
한 겹 두 겹 옷을 껴입고 밖으로 나서니 되려 얼굴에 닿는 찬 공기가 상쾌합니다.
새벽에 본 시가 무엇인지 떠올리다가 금세 분주한 세상 풍경에 정신을 빼앗깁니다.
그렇게 방심한 사이에 저 멀리서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보다 먼저 바람소리가.
바람이 몸에 닿을까 봐 얼른 물색해둔 동네 카페에 들어갑니다.
컴퓨터 모니터보다 더 작은 크기의 테이블 네 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조그마한 공간.
주인도 공간을 닮았습니다.
뿌애진 안경 너머로 주인을 겨우 찾아 주문을 합니다.
얼죽아가 아니라 더죽아,
더워 죽겠어도 뜨거운 아메리카노를 시키는 터라 따뜻한 커피를 시킵니다.
잠시 머그잔에 손을 대고 몸을 녹인 후에 겨우 노트북을 꺼냅니다.
노트북이 테이블을 거의 차지하는 바람에 조심조심 커피를 들었다 놨다 마시고요.
춥긴 추운 날씨입니다.
머그잔의 커피는 어느새 식어 얼음 뺀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됐습니다.
“아침부터 난방을 했는데 온도가 안 올라요.”
주인장은 단골인 듯한 손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하소연합니다.
옆 테이블의 손님들도 겉옷을 벗지 않고 있더니만.
그나마 작은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 덕분에 입김이 나올 정도는 아니네요.
사람의 온기로 채워지는 작은 동네 카페입니다.
골똘히 원고를 바라보다 잠시 찬바람을 맞으려 밖으로 나섭니다.
바깥에는 아직 어둠이 내려앉지 않았는데,
별 대신 전구가 둥둥 떠다닙니다.
하나둘셋넷…
바람에 실려 둥둥 떠 있는 노란 불빛.
전구는 곧 눈이라도 내릴 듯 찌푸린 하늘을 장막 삼아 무대를, 아니 거리를 불 밝힙니다.
사람의 온기가 사람을 데우듯,
전구의 불빛이 하늘을 밝힙니다.
온기.
사람은 온기를 가진 존재입니다.
차가운 숫자로 매겨지는 존재가 아닌 게죠.
문득 새벽녘에 읽은 신문기사가 떠오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처벌 조건을 1명이 아니라 2명 이상으로 해달라는 경제계의 요청이 있다지요.
그들에게는 1이라는 숫자에 담긴 온기와 삶이 보이지 않나 봅니다.
그래서 1과 2의 숫자로 처벌 ‘조건’을 따집니다.
단 한 명이라도 살리려는 노력보다 ‘한 명쯤이야…’라는 잔인함에 기겁을 할 수밖에요.
하늘에 떠 있는 전구알 하나라도 꺼지면 어떻게 될까요?
누군가의 눈에는 그까짓 하나쯤이야 꺼진다고 해도 어두워지겠냐고 할 테죠.
또 다른 이는 보기 흉하다고 슬쩍 보기만 하고 지나갈 수도 있겠죠.
그렇게 지나치는 전구의 불빛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나에 이어 또 하나가,
둘에 이어 이윽고 전부가 꺼지고 말겠죠.
거리는 결국 어둠에 잠기고요.
어느덧 잿빛 하늘은 어둠에 잠기고,
거리는 전구의 불빛과 가로등으로 환해집니다.
하던 일을 정리하고 카페 밖으로 나섭니다.
전구알 하나하나 눈에 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