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말할 것도 없는 하루

by 글담

동쪽을 바라보니 어스름이 완전히 내려 앉았고,

서쪽을 바라보니 저녁노을이 서서히 사그라집니다.

각자가 갈 길이 바쁠 시간.

길 위에는 붉고 하얀 불빛이 꼬리를 물고 기다란 줄이 이어졌습니다.

할 일이 있어 들른 카페에도 모처럼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손님이 한둘 들어오며 공간의 적막함을 지웁니다.


바람이 불어 루프탑의 천막은 마구 흔들리고,

바깥에 세운 작은 입간판은 어느새 넘어져 발길을 막았습니다.

입구를 간단히 정리하고 들어오니 카페지기가 뭔가를 내밉니다.

“아이스크림이 다 떨어졌어요.”

아, 가게에 얼른 뛰어 가서 아이스크림을 사옵니다.


책을 읽던 손님이 나가고 나니 카페는 조용한데,

바깥에서 자동차 경적 소리가 요란합니다.

빨리 가고픈 마음이 울려 퍼집니다.

나는 언제 가야 할지 몰라 원고를 덮습니다.

옥상 정원에 불을 밝히고,

책을 꺼내 듭니다.

온종일 원고 두 개를 읽었으니 책 두 권을 본 셈이죠.

그래도 어제 새벽에 급히 읽고 싶어 주문해서 받은 책을 펼칩니다.

팟캐스트를 듣다가 마음이 동해서 산 책이에요.

읽어야 하는데 글이 눈에 안 들어오는군요.


머릿속이 꽉 찼거나,

혹은 누구 말마따나 하얗게 불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잠깐의 여유를 즐기려 합니다.

어째 저녁에는 손님이 더 올 듯해서 옆에서 일을 도와야 할 것 같네요.

쓰다 지우다 다시 쓰면서 이 시간을 조용히 보내고 싶군요.

카페에 퍼지는 음악도 소리를 줄였습니다.

노을이 지기 전에 다시 한 번 내다 보고요.

가볍게 조용히 지나가는 일상,

뭔가 말할 것도 없는 하루.

오늘은 이렇게 하루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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