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불빛을 마시렵니다

by 글담

한순간이었습니다.

그저 불빛일 뿐인데 마치 불을 쬐는 듯 따뜻함을 느낀 것은.

캄캄한 동네를 헤매다 불빛을 발견한 것처럼 반가웠던 것은.

골목 안에 숨어 있던 카페는 아늑한 피난처가 됐습니다.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따뜻한 커피를 주문합니다.

오늘은 커피 맛이 어떨지 몰라도 따뜻한 불빛을 마시렵니다.


한 앳된 소녀가 꽃 한 송이를 들고 카페에 들어오네요.

카페가 마음에 드는지 연신 사진을 찍습니다.

카페 주인장은 핫초코인지 따뜻한 차인지 모를 음료를 갖다 주는군요.

소녀는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스푼으로 천천히 음료를 젓습니다.

뜨거운지 호호 불며 한 모금,

카페가 좋은지 싱긋 웃으며 찰칵 사진 한 컷.

늦가을 밤 동네 골목 카페는 한껏 여유가 넘칩니다.

주인장은 바빠도 손님들은 손짓 하나 여유롭고 대화의 조각마다 부드럽습니다.


얼마 전 밤새 비는 질척거렸습니다.

속 시원하게 대지를 적시는 게 아니었습니다.

조금씩 질척대며 서서히 물들이네요.

가을밤 산책이 뜻하지 않은 우중 산책으로 바뀌었습니다.

발걸음이 급해졌다가 차츰 느릿느릿 바뀝니다.

빗줄기라기보다 빗방울에 가까운 가을비를 그냥 맞으려고요.

끊어질 듯 툭툭 떨어지는 빗방울이 점점 선으로 이어집니다.

시간도 툭툭 끊기듯 흐르다가 어느새 선으로 이어져 흐르네요.

비는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자연스레 뚫고 지나가는 시간의 선이 되어 밤새 내립니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하루 이틀을 보낸 세상.

적막과 설렘이 어우러져 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겨울의 적막은 연말을 맞은 도심의 불빛과 카페의 음악에도 쉽게 지워지지 않고요.

어떻게 될지 모를 인생과는 달리,

세상은 또 한 번 봄과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이라는 정해진 시간을 보냅니다.

적막과 어수선한 분위기가 발걸음을 뗄 때마다 번갈아가며 찾아옵니다.

마치 인생의 희로애락이 시시때때로 바뀌며 찾아오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