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안 일어나셨네요.”
카페에서 일하는데 너무 졸리더군요.
참다 못해 쿠션을 가슴에 대고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카페의 음악 소리를 들으며 눈만 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도 너무 퍼질러 자는 것으로 보였나 봅니다.
카페 주인장의 말 한마디에 무거운 머리를 들어 올립니다.
방금 눈을 떴지만,
정신은 여전히 심연을 헤맵니다.
당장 작업을 하려니 글자만 나열할 듯하고,
책을 읽자니 글자가 머리만 때리고 흩어질 듯하네요.
아무래도 흐리멍텅한 머리를 깨워야겠습니다.
이런저런 궁리를 하다가 사진을 꺼내 봅니다.
주르륵 훑어보다가 얼마 전 낯선 골목길에서 본 귤이 떠올랐습니다.
누군가가 떨구고 간 귤일까요.
아니면 누군가가 주으라고 살포시 놓고 간 귤일까요.
한적한 이른 아침의 산책길에서 묘한 호기심을 품어 봅니다.
흠집 하나 없이 골목길 계단 위에 있는 귤은 또 상상을 불러일으킵니다.
하나의 이야기는 하나의 삶만을 살게 하고 알게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 또 다른 삶을 떠올릴 때 비로소 내 삶은 풍요로워지겠죠.
어쩌면 인생도 하나, 존재도 하나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나뿐인 존재와 인생인데 어찌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내냐고요.
과연 그럴까요?
겨울 한낮과 한밤을 보내더라도,
어느 날은 고즈넉한 여유의 고요로 다가옵니다.
또 어떤 날은 삭막하고 무자비한 고요로 다가섭니다.
어떤 고요인지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겠죠.
나는 여러 이야기를 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지 못해 답답할 뿐.
오늘은 어떤 이야기의 실타래를 풀어가며 살까요.
계단 위의 귤 하나가 던진 질문은 뜻밖에도 진지했습니다.
진지한 물음에 가벼운 대답을 할 수 없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바다의 이야기가 기다리는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