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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Mar 12. 2024

봄의 변덕 덕분에 얻은 그림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어느 봄날 밤길.

골목 안 카페의 창문은 마치 그림처럼 덩그러니 벽 한가운데 놓였습니다.

캄캄한 밤 빗줄기 사이로 봐서일까요.

누군가 붓칠을 한 듯 창문은 그림으로 와닿습니다.

그림 속, 그러니까 창문 안 카페는 따뜻하겠죠.

한폭의 그림 너머 어떤 광경이 있을지 떠올려 봅니다.

상상은 보이지 않을 때 즐거운 법이니까요.


그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상상한 대로 아늑합니다.

곳곳에 놓인 소품과 책, 주인장의 밝은 미소까지 온기를 더합니다.

잠시 자리를 정리하고 차 한 모금 마신 뒤에 궁리합니다.

늦된 책 읽기에 빠질까요,

밀린 원고에 매달리까요.


따뜻하니 잠이 옵니다.

정신은 멀쩡합니다.

시를 읽고 싶습니다.

시를 읽을 줄 모릅니다.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네요.

봄이 와도 겨울인 것처럼,

겨울인가 해도 봄은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두툼한 옷과 얇은 옷이 오가는 거리처럼 모든 게 엇갈립니다.

이럴 때는 눈을 감습니다.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을까 해서요.

그러니 다시 잠이 옵니다.

봄의 변덕입니다.


한껏 봄을 안으려 얇은 옷을 입었다가 된통 당했습니다.

봄의 변덕은 새침한 그 혹은 그녀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래도 봄의 변덕 덕분에 골목길 그림 한 점을 건졌습니다.

그제야 봄이 온 것을 실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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