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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담 Apr 09. 2024

마음속 꺼진 전구의 줄을 당겨 봅니다

한갓진 주말에 봄 햇살보다 반가운 이를 만나 돌아다녔습니다.

둘이서 책과 노트북을 담은 가방을 맨 채 마치 탐험하듯 골목 곳곳을 기웃거립니다.

“그때 그곳! 가려다가 자리가 없어서 돌아 나왔던 거기로 가죠.”

막역지우는 그때 머물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아 있었나 봅니다.

나야 예전에 한 번 갔던 곳이라 심드렁했지만,

다소 번잡한 도심과 왠지 떨어진 곳처럼 여겨져 발길을 재촉합니다.

그곳에 다시 들어서고 난 뒤에야 그 심드렁한 마음이 부끄러워집니다.


미처 알지 못한 공간이 숨어 있더군요.

아니, 원래부터 있던 공간을 제가 찾지 못했을 뿐이죠.

그 공간으로 스며드니 한낮에도 전구는 불빛을 밝힙니다.

노란 전구의 불빛은 퍼지지 못하고 오무린 채 공중에 떠 있습니다.

그런데도 왠지 공간을 밝히는 것 같네요.

어쩌면 카페 공간이 아니라 다소 지친 내 마음의 공간을 밝히는 것일지도.


전구에 달린 줄을 딸깍 당겨야 불이 켜지고 꺼지는 전구.

내 마음속 전구의 줄을 살짝 당겨 봅니다.

지금 마음속 불을 켜는 것인지 꺼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맞은편에 앉은 이는 불을 켜기를 바랍니다.

나는 잠시나마 불을 끄기를 바라고요.

냉정과 열정 사이.

열심과 휴식 사이.

불을 끌까요, 켤까요.


노트북을 꺼내 잠시 일을 합니다.

이 주말에!

엉뚱한 줄을 당겨 불을 켠 것 같아 피곤합니다.

얼른 끄고 다른 불을 켜야겠습니다.

독서등을 켜서 책을 봐야죠.

마음속 전구는 그렇게 마음에 따라 여러 불을 켜고 끕니다.


한순간이겠죠.

마음먹은 대로 뭔가를 한다는 것은.

물론 오랜 고민과 치밀한 계획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테죠.

때로는 이런 고민과 계획 따위 덮어두고,

마음속 어느 방에 꺼진 전구의 줄을 당길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움직일 때입니다.

오랜 적막과 우울, 굳어버린 몸을 일으킬 때죠.

오늘 살짝이 줄을 당겨 봅니다.

불이 희미하게 켜집니다.

그럼,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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