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니 한숨 잘래요.”
“그래요. 손님 오면 말해줄게요.”
자려는 사람은 카페 주인이고,
깨워준다는 사람은 진상 단골인 나입니다.
뭔가 뒤바뀐 것 같지만 뭐 상관없습니다.
황사도 걷힌 봄날 주말 오후,
주인장에게 왜 이리 손님이 없을까 하고 물으니 다들 놀러 갔을 거라고 합니다.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나른한 봄날,
널브러진 몸을 겨우 일으켜 카페에 왔더니 주인장도 낭창합니다.
손님 없는 지루한 일요일을 버티느라 애를 쓰고 있는 게죠.
그 모습에 잠시 정신을 차립니다.
일하러 왔으니 일을 해야죠.
일을 하려고 애를 쓴 덕분에 밀린 것들을 조금이라마 처리합니다.
이제 꽃구경이나 갈까요?
목련은 활짝 피기 전 모습이 가장 좋은 듯합니다.
활짝 피면 이내 한 잎 두 잎 꽃잎이 떨어져 타올라버리니까요.
땅에 떨어져 갈변하는 목련 꽃잎은 매화나 벚꽃, 개나리처럼 슬며시 사라지지 않습니다.
기어이 자신의 최후를 보여줍니다.
보면서 뭔가를 깨달으라고 저토록 불사르는 듯하지만,
덧없는 세월 운운하는 상투적인 느낌을 말하려니 왠지 비웃을 듯합니다.
자목련은 어느새 활짝 폈습니다.
머지않은 곳에 있는 하얀 목련은 벌써 꽃잎을 떨어뜨렸고요.
떨어진 꽃잎은 서서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봄은 아직 오지도 않은 듯한데,
그 짧았던 따뜻한 날에 확 피었다가 지고 마네요.
뭐가 그리 급한지.
카페를 잠깐 나갔다 들어오면서 문을 살짝 여닫습니다.
혹여라도 문에 달아놓은 종이 울릴까 봐,
종소리에 주인장이 깰까 봐 조심스럽습니다.
꾸벅꾸벅 조는 주인장을 얼핏 보고 자리에 살며시 앉습니다.
짧은 꽃구경에 이어 책을 읽습니다.
독서는 나를 표현하기 위한 자극이라는 쇼펜하우어의 글귀를 한참 바라봅니다.
표현하지 않는 독서는 의미가 없다는 뜻이겠죠.
또 그의 말대로 자극을 받고 표출하지 않으면 그 자극에 무뎌진다는 말에 뜨끔해 합니다.
요즘 너무 무뎌진 게 아닌지.
독서만큼이나 중요한 게 독후 활동이죠.
나의 독후 활동은 주춤한 듯합니다.
깨어 있는, 도끼와 같은 책 읽기를 해야 할 텐데 말이죠.
책을 읽으며 졸음과 싸워야 하는 게 우선이니 할 말이 없습니다.
목련 꽃잎은 생명을 다해 봄이 오고 또 지나가는 것을 알리는데,
기껏 책을 들고 앉아 밑줄만 긋는 게 왠지 부끄럽습니다.
화려하게 피고 지는 것만을 보는 게 아니라 피다 만 꽃도 있습니다.
그런 꽃에도 눈길을 주는 마음가짐으로 이어지는 독서였으면 합니다.
그래야 세상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래야지만 나를 표현하는 행동으로 이어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