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담 May 28. 2024

이음과 끊음 사이의 시간에서

꽃잎이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나와 땅에 떨어졌을 때,

바람은 미안했는지 꽃잎을 살포시 흩뿌려 놓았습니다.

허망했을까요.

찬란한 햇살을 머금고 고개를 흔드는 꽃봉오리.

언제 쓸려갈지 모를 땅바닥에 널려 있는 꽃잎들.

자꾸만 눈길은 점점이 흩어져 있거나 다소곳이 쌓인 꽃잎에 머뭅니다.

허망해서일까요.


구름이 땅으로 바짝 다가온 날.

바람이 둘 사이를 가르는 날.

내가 잠시 숨어 있을 곳을 찾지 못해 찾아든 골목길.

시간의 흔적을 온몸에 새긴 담벼락과 어둠을 몰아내려는 가로등.

벽에 나를 비추어 봅니다.

벽은 나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잠시라도 더 머물고 싶지만 시간의 이음새가 끊어질까 봐 서둘러 떠납니다.


톡 톡 떨어져 있는 꽃잎은 장미라는 이름을 잃어버렸을까요.

이름으로부터 떨어지면서 꽃잎은 존재를 상실했을까요.

오월의 아픔이 길에 흩뿌려지던 날.

비로소 존재를 드러내고 역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겨야만 했던 날.

흔적과 아픔이 아스라이 사라질 듯하다가도 되살아나는 날.

붉은 꽃잎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름이 나풀거립니다.

사람도 하늘거립니다.

시간이 어른거립니다.

오월의 바람이,

오월의 낙화가,

오월의 거리가,

떨구는 고개를 들게 합니다.

하늘이 맑아서요.

눈이 시리도록.


이음과 끊음 사이의 시간은 기억과 망각을 오가게 합니다.

이제는 잊자는 말이 쉽게 잊어버리자는 폭력이 되고,

영원히 기억하자는 말은 애달픈 비가가 되어 곁을 맴돕니다.

찰나의 삶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은 이토록 어수선하고 어리석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몰입하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