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을 머금은 꽃을 한참 바라보다 사진에 담고 싶었습니다.
사실 꽃보다 꽃이 머금고 있던 햇살을 담으려 했습니다.
살짝 드리운 그늘을 슬며시 밀어내는 햇살을.
그래야 책 속에서 만난 세계를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래야 머리를 무겁게 만든 물음을 잠시라도 떨칠 수 있을 듯해서요.
“일하러 온 게 아니고 책 보러 오셨네요.”
“주말이잖아요.”
주말에도 일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왔던 주제에 마치 의아하듯 되받아칩니다. 일요일인데 모처럼 원고를 보지 않겠다고 작정하고 나온 터라 싱글벙글합니다.
원고는 제쳐두고 책을 펼쳤습니다.
느긋한 마음으로 소파에 몸을 깊숙이 파묻고는 나도 모르게 미소 짓습니다.
책이 묻는 물음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동안 믿고 있었던 합리와 상식과 소통은 또 다른 폭력이었습니다.
차츰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합리와 상식이라는 명분이 얼마나 폭력이었는지 곱씹으면서.
소설 속 주인공의 피해의식이라고 하든,
죄책감을 변명하는 것이라고 하든 간에 그의 절규는 묵직했습니다.
합리적으로 살아야 된다고,
상식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했던 말이 타인을 얼마나 옥죄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문득 착하게 산다는 게 뭘까? 하는 생각으로 잠시 책을 덮습니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은 양면적입니다.
타인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자는 말일 수도 있지만,
순종과 굴복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의도가 숨어 있든 아니든 간에.
외국인에게 한류와 한국화를 이야기하는 게 어쩌면 강요된 억압인 것처럼 말이죠.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뭔가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답이 무엇인지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치의 양면성에 대해 작가도 굳이 노골적으로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그저 의식하며 살아가야 할 듯합니다.
아무리 미사여구로 포장된 가치라도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