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날 초저녁의 바람은 숨결을 강물에 떨림으로 남기고,
구름은 잿빛에서 분홍으로 서서히 바뀝니다.
높다란 빌딩은 반사하던 빛을 다시 삼키고,
점점이 불빛을 하나씩 밝힙니다.
일과의 마무리, 혹은 새로운 시작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지금 읽는 책은 소설이에요.”
읽고 있는 책이 소설이란 말에 갑자기 조용해집니다.
갑작스러운 침묵에 당황했습니다.
평소 사회나 정치, 철학 등을 읽는다고 하면 쏟아지던 질문들.
이번에는 어째 아무 말도 없습니다.
소설 나부랭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사실 머리 좀 식히려고 소설을 읽는다는 말은 좀처럼 이해되지 않습니다.
소설은 읽을수록 머리가 아프거든요.
인간의 실존, 불안, 부조리 등을 담은 게 대부분인지라.
어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나 싶더군요.
여전히 소설이나 시를 읽는 게 어렵습니다.
행간을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는 속도가 빨라지는 게 되려 불안합니다.
시나 소설의 작법보다 독해에 더 공을 들여야 할 듯합니다.
모든 인간은 거기서 거기라는 오만한 생각에서 벗어나려면요.
복잡하기에 인간이고,
인간이기에 더욱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스름이 내려앉고 불이 하나둘 켜지는 시간.
모든 것이 불확실해지면서 동시에 변하는 시간.
이 또한 시와 소설에서나 다룰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 시간을 이해할 수 있을 때,
한 길 사람의 아득한 속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