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럽게 가을이 찾아오더니,
급작스럽게 날씨는 바뀌었습니다.
노을도 여름의 그것과는 다릅니다.
강렬한 붉은 색보다 아련한 보랏빛으로 어스름에 가려집니다.
“모하노? 오늘 바쁘나?”
한가로운 주말이 바쁠 리가 있을까요?
모처럼 뒹굴거리며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습니다.
이주민 의료 지원을 하는 의사 선배가 같이 놀자고 합니다.
저녁에 이주민 관련 행사가 있다고 가자네요.
밥 먹자고요.
밥이라니.
함께 먹는 밥만큼이나 맛있는 게 없죠.
낯선 곳에 기회를 찾아 온 사람들에게 희망과 절망 중 어떤 것이 더 가까웠을까요?
그들은 이렇게 말하는 듯합니다.
이주민이라는 단어 이전에 불러야 할 것은 ‘인간’이라고 말이죠.
미등록이라는 단어 이전에 불러야 할 것은 ‘이웃’이라고 말이죠.
정작 기회의 땅에 와서 겪은 것은 희망과 절망의 경계에 선 자신을 발견한 것이죠.
인간과 이웃을 두려워하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까요.
누구나 외로운 시대입니다.
저마다 외롭다고 합니다.
이주민도 외롭지만,
토박이도 외롭습니다.
그런데도 주위를 둘러보려 하지는 않습니다.
골방에, 스마트폰에 갇혀 외롭다고만 합니다.
둘러보려 하지 않고 밀어내려고만 합니다.
그러니 인간과 이웃보다 이주민과 미등록이라는 단어에 갇혀 바라봅니다.
품지 못하고,
보듬지 못하고,
마주하지 못하는 삶은 외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외롭지 않고,
상대방이 외롭지 않으려면 당연히 만나야죠.
손을 맞잡을 수 있어야겠죠.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