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쏟아질 듯 잔뜩 지푸린 하늘은 기어이 비를 뿌립니다.
움직일 때만 딱 맞춰서요.
집에 있을 때와 약속 장소에 도착할 때는 비가 그쳤거든요.
그나마 가을 하늘을 봐서 다행입니다.
창문 밖 하늘은 분명 가을입니다.
송송 구멍 난 나뭇잎은 뜨거운 여름의 흔적일까요.
벌레가 먹은 것이겠지만,
내 눈엔 뜨거운 햇볕이 구멍을 낸 것처럼 보이네요.
그만큼 뜨거운 여름을 보냈습니다.
아직 물러나지 않은 여름과 뒤늦게 찾아온 가을이 함께합니다.
자연의 흐름에 맞춰야 한다지만,
지금은 분명 잘못된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그러니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될까요.
잘못된 흐름을 만든 주체가 이런 소리를 한다는 게.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 상처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안기는 상처가 아닙니다.
우리가 스스로 만든 치명적인 상처이죠.
기후위기는 신체적인 질환과 더불어 정신건강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칩니다.
우울증과 자살 충동, 무기력 등 여러 정신질환을 불러일으킨다고 하죠.
더군다나 기후위기는 불평등의 문제도 더욱 악화시키죠.
피해자들의 대부분은 빈곤하거나 취약한 계층이니까요.
스스로 자해하는 것을 안타까워 하거나,
심지어 혀를 끌끌 차면서 정작 인류라는 집단의식은 어떤가요?
세계 곳곳에서 미래 세대들은 분노를 드러냅니다.
그들은 위기의 주범이 아닌데 위기가 초래하는 재앙을 고스란히 안아야 하니까요.
그 분노 앞에서 기성 세대는, 인류는 음모론까지 들먹이며 외면하려 합니다.
자해의 끝을 보는 듯합니다.
먹구름이 낀 하늘이라도 가을을 느긋이 즐겨야 하는데,
구멍이 뚫린 나뭇잎을 보니 싱숭생숭합니다.
게다가 올 가을은 유독 짧을 거라고 하죠.
잠깐이나마 가을을 즐기면서 조금이나마 지구를 생각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