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을 느끼며 시작하는 사유

by 글담

희뿌옇게 밝아오는 새벽,

설익은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새해가 밝았다고 하나,

무심하게 바라봅니다.

또 하루가 시작됐다는 작은 일상의 느낌으로 새벽 여명에 다가섭니다.


무엇이 다른지 모를,

해 바뀜에 스스로 놀랍니다.

이렇게도 무디다니.

이른 아침부터 여기저기 새해 인사를 나눕니다.

그런데도 진통제를 먹은 듯 해가 바뀐 것의 감각을 찾지 못하고요.

그저 하루가 다시 시작됐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 달라진 게 있군요.

밀린 신문과 잡지를 꺼내 읽습니다.

해가 바뀌었으니 더는 미루지 말겠다고요.

나름대로 사유의 시간을 가지려고 종이신문과 잡지를 꾸준히 읽습니다.

신문과 잡지를 넘기는 물성,

문장과 지면의 편집 행간을 읽어내려는 사유.

이른 새벽과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것으로 꽤 괜찮지 않은가요?

은근히 디지털 디톡스도 되는 듯하고요.


물성과 사유를 말하면서 거창한 철학을 떠올리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쓰더라도,

설령 글이 환상의 세계를 다룬다고 해도 그 상상의 시작은 땅입니다.

내가 발 딛고 있는 곳,

내가 숨 쉬며 사는 곳,

그 세상의 물성을 느낄 때,

사유는 시작되지 않을까요.


환희에 찬 새해의 소망보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어려운 숙제가 떠오릅니다.

내가 물성을 느끼는 세상에서 들리는 흐느낌은 해가 바뀌어도 멈추지 않습니다.

밝은 대로를 걷는 삶이 아니라 깊은 탄광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삶.

개인의 잘못이라고 비난하기보다 그 사연을 읽고 공감하는 것도 물성을 느끼는 것이겠죠.

그 물성으로부터 더불어 사는 것에 대한 사유가 시작되고요.

한참 묵혔던 시집도 꺼내 읽습니다.

어지러이 피어오르던 머릿속 상념의 연기가 잦아듭니다.

생각을 곱씹는 시간을 가지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