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서서히 번지는 해 질 녘.
하루의 서문을 쓰다가 어느덧 맞이한 마감의 시간.
함께 산책을 나선 이들은 벌개진 얼굴로 야트막한 언덕을 오릅니다.
이곳에 있을 줄은 몰랐던 억새인지 갈대인지 모를 숲을 보면서.
산에 있으면 억새, 물가에 있으면 갈대라고 하죠.
이곳은 산에 가까운 곳이니 억새일까요?
모양새나 개화 시기를 보면 갈대인 것도 같고요.
어쨌든 보기에 좋아 한참을 바라봅니다.
억새, 혹은 갈대는 주홍빛으로 물드는 하늘만큼이나 부끄러워 고개를 숙입니다.
노을을 배경으로 석양빛을 받으며 은은한 갈색을 드러내고요.
삭풍이 부는 삭막한 언덕길에서 결핍을 느끼다가 뜻밖에 얻은 푸근한 정경입니다.
아,
결핍의 마음으로 뭔가를 쓰려고 했는데,
한순간에 마음은 글쓰기로부터 멀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어떤 작가는 결핍이 문장을 끌어내는 은밀한 손잡이라고 말했습니다.
결핍과 슬픔은 쓸모없는 게 아니라 글쓰기의 자양분이라는 거죠.
결핍과 슬픔으로 절어 있을 때,
다분히 절망이라는 단어의 끈으로 스스로 조일 때,
희망이라는 단어를 부여잡고 견딘다는 것.
글쎄요.
가끔은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아 멍하니 있습니다.
그때 나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어떤 단어나 의미보다 사람이었습니다.
홀로 떨어진 나에게 다가와 손길을 내미는 사람.
관계 맺기를 통한 치유의 시작입니다.
고립과 절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쩌면 슬쩍 건네는 온기의 손길일 수 있습니다.
그저 말없이,
호들갑도 떨지 않고 내미는 손길.
관계 맺기에 서툴고,
관계망도 좁아지는 이 세상에서 작은 온기의 손길은 소중할 따름입니다.
베트남 친구는 오랜만에 고향을 다녀왔다면서 이것저것 챙겨 줍니다.
오랜 인연의 선배는 부탁의 손길에도 스스럼없이 맞잡아 줍니다.
목소리의 작은 떨림에도 뭔가를 알아채고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이도 있습니다.
이렇게 소소한 손길에 또 고개를 들어 세상을 바라봅니다.
여전히 해는 떠 있고,
어둠에도 별은 빛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