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없는 꽃길을 걷습니다

by 글담

봄이 와야 할 시간에 겨울이 심술을 부리나 봅니다.

가뜩이나 눈이 오지 않는 동네인데,

봄을 기다리는 순간에 펄펄 눈이 왔습니다.

앙상한 나뭇가지는 봄꽃을 틔우기 전에 눈꽃을 주렁주렁 매달았고요.

어느새 눈꽃은 얼어붙었지만,

이내 사라질 꽃이라도

한밤의 산책을 여유롭게 해주는군요.


봄날 같은 날씨에도 꽃은 피지 않습니다.

꽃길이라 불리는 길에는 메마른 나무들만 줄지어 서 있고요.

가까이서 보면,

아직도 앙상한 가지가 힘없이 바람에 흔들립니다.

멀리서 보면,

연둣빛이 비치는 봄맞이를 하고 있는데 말이죠.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풍경뿐만 아니라 시간도 달라집니다.

가까이서 봤을 때는 겨울인데,

멀리서 보면 분명 봄은 가까이 왔습니다.

살랑이는 봄바람에 연둣빛이 물결치고요.

저 멀리 희끗희끗 하얀색은 꽃 핀 매화인 듯합니다.


꽃이 없는 꽃길을 걸으면서 봄을 그려봅니다.

가까이에서는 보지 못했던 봄을.

저 멀리 물결치는 연둣빛으로 어림짐작합니다.

이제 곧 오겠거니 하고요.

길바닥에서 지인들과 함께 걸으며 피우는 수다 꽃도 한층 풍성해졌습니다.

봄이 오니 설레나 봅니다.


설렘은 환대를 불러옵니다.

낯섦은 경계를 일으키고요.

따지고 보면,

낯섦조차 환대를 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낯설어서 설렐 때가 있습니다.

낯설어서 설레는 것이기도 하고요.

낯선 이를 반겨야 하는 이유입니다.


봄과 겨울의 경계도 낯설죠.

그 낯섦에 다가올 봄을 설레며 기다리듯이,

사람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무엇이 달라도,

그 무엇을 따지지 않고 반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꽃이 없는 꽃길에서 오가는 사람들이 반가운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