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찾아왔다고 놀라워했습니다.
봄을.
밤중 산책에서 저 멀리 촘촘히 박힌 지상의 하얀 별 무더기를 발견했을 때,
미처 매화가 피어날 조짐조차 몰랐다며 한심한 산책자의 둔감을 탓합니다.
어둠을 뚫고 나온 지상의 하얀 별을 담고,
무심했던 마음을 반성하며 가던 길을 마저 갑니다.
사실 느닷없이 찾아온 봄이라고 하지만,
가만 생각해 보면,
봄은 조금씩 자신의 소식을 알렸었죠.
메말랐던 나뭇가지에 연둣빛이 돌고,
목련은 어느새 꽃망울을 부풀리며 따스한 봄 햇살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인연도 가만 보면,
서서히 그 인연의 시작을 알리는 조짐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낯선 인연이라고 해서 경계하거나 배척할 이유가 없는 이유입니다.
알고 보면,
이방인들과의 만남은 예정된 순서였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외국인 노동자나 장애인,
사회적 소수자들은 이미 존재했거나 우리 곁에 자리 잡을 것임을.
칸트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이방인이나 낯선 이에 대한 환대를 ‘권리’라고 합니다.
‘의무’가 아닌 ‘권리’로서의 환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권리를 저버리는 손해를 보고 있는 셈이죠.
그들과 함께하는 권리가 주는 선물을 생각하지 못하고요.
넘지 못하는 경계의 울타리는 선물을 가로막는 장벽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다양성을 찾으라고 합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느끼는 호기심으로 말이죠.
무력하지 않게,
고립되지 않게.
놀이터에서 저마다 놀다가도 금세 친해지는 아이들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좋지 않을까요.
갑자기 찾아온 봄이 아니라 조금씩 스며든 봄과 같은 존재들.
그들과 함께할 수 있는 마음이 곧 나를 위한 마음입니다.
이 사소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깨닫는 게 쉽지 않습니다.
내 마음에도 내가 미처 모르는 굳건한 장벽이 있을 테니까요.
오늘도 누군가를,
세상을 바라보면서 서서히 장벽을 허물어 봅니다.
어느덧 곁에 있는 친구가 된 이방인이 맛있는 것을 산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