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프레소 꼰빠냐와 진상

by 글담


얼마 전에 ‘진상의 품격’이란 글과 사진을 올린 적이 있습니다.

스스로 진상이라 여기니 마음이 참 편합니다.

진상이라고 자각을 하니 제대로 된 진상 짓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나름 눈치를 보는 거죠.

오늘도 진상 손님으로 카페를 찾았습니다.

할 일이 많아 이 더운 날에 작정하고 온종일 머물 생각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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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상의 뻔뻔함으로 큰 테이블을 턱하니 차지하고 앉았습니다.

주문은 일단 커피 한 잔.

시간이 지나면 맛있는 자몽블랙티를 시킬 생각을 했죠.

그런데 카페 매니저가 진상 손님에 대처하는 법을 일찍 깨달았나 봅니다.

늦은 오후쯤 되어 잠시 화장실에 갔다 오니 내가 있던 테이블에 서 있네요.

뭔가 싶어 테이블과 매니저를 번갈아 봤는데,

테이블 위에 뭔가가 놓였습니다.

검고 작은 에스프레소 잔이 보입니다.

“에스프레소?”

“아, 에스프레소이긴 한데 에스프레소 꼰빠냐라고…”

에스프레소에 크림을 얹은 커피입니다.

콘파냐보다 꼰빠냐가 더 어울리는 커피를 마셔봅니다.

“나 이제 커피 시키면 이걸로 줘요.”

“메뉴에 없는데…”

아, 서비스도 이런 서비스가 없습니다.

일한답시고 앉아놓고는 하품이나 쩍쩍 해대니 안쓰러워 보였는지 마련했답니다.

또 한 번 아…

달짝지근한 에스프레소 꼰빠냐를 먹어서일까요?

잠은 달아나고 당은 충당했고 원고 작업이 속도가 붙습니다.

동네 카페는 찾는 이유는 공간도 메뉴도 마음에 들지만,

서로가 나누는 소소한 정 때문인 듯합니다.

아, 물론 이런 생각은 나 혼자만의 생각입니다.

그들의 눈에 나는 진상일 뿐.

그러나 진상에게도 따뜻함을 나눠주는 그분들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습니다.

역병과 더위 때문에 한숨이 늘어난 그분들에게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불었으면 합니다.

진짜 시원한 바람이든 이 사회가 부채질해주는 바람이든 간에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