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보슬비가 그치지 않습니다.
그칠 듯 말 듯 골목을 차츰 적십니다.
비 오는 날,
가을은 이리도 얌전하게 찾아오려나 봅니다.
그렇게 더위가 물러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가 와서일까요.
입추에 걸맞은 한 풀 꺾인 더위입니다.
비가 오니 무더운 날씨이지만,
바람 한 줄기 목에 감고 짧게나마 걸어봅니다.
그리고 도착한 동네카페.
오늘은 오전과 오후로 나눠 두 군데를 찾아갔습니다.
한곳에서는 무뚝뚝한, 자기 말로는 성질이 못된 사장이 시큰둥하게 반깁니다.
아주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면서요.
또 다른 곳에서는 반갑게 맞아줍니다.
“휴가 잘 다녀오셨어요?”
아…
글 쓰는 일을 한 뒤부터 마음 편히 여름 휴가를 보낸 적이 없었답니다.
올해도 아마…
시간은 기억을 낳고,
기억은 감정을 쌓고,
감정은 어제와 타인을 이해하게 만듭니다.
미화된 추억이 됐든
그럴 만했다고 맥락을 이해하든
시간과 기억과 감정은 복잡미묘한 삶과 세상사에 나만의 타당한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비 오는 날이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는데,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하거나
살며시 얼굴을 붉히게 하는 지난 날의 일들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은 시간과 기억과 감정이 작용한 것이겠죠.
어제 찾아갔던 단골 카페에서 매니저가 슬쩍 건네준 커피가 매우 진했습니다.
이번에는 확실히 잠을 깨고 쌓아둔 책을 읽으라는 듯
진한 에스프레소꼰빠냐를 서비스라고 내주었습니다.
저는 진상에다 적립 포인트가 가장 많은 골든 멤버이니까요.
그나저나 진한 커피를 마시고 나면 잠에서 깨어나
시간과 기억과 감정이 마구 얽힌 실타래를 풀어낼 수 있을까요?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으니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아니면 에어컨 찬 바람에 잠이 다시 솔솔 오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