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헤픈거 알죠? 박애주의자야, 뭐야!”
“넌 그렇게 고결하냐? 넌 한 번도 안 헤퍼봤어? 그럼 그게 잘못된거니? 누가 사랑을 고따위로 지꺼 다 움켜쥐고 한대니! 싸가지없게.”
“헤픈 게 사랑이니?”
“헤픈 게 사랑이야! 이 바보천치야!”
10여 년 전 방송된 어떤 드라마에서 남녀가 주고받는 대화입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헤프다고 하니,
여자는 남자에게 “헤픈 게 사랑이야!”라고 단호히 말하며 돌아섭니다.
그 여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적으로 헤픈 게 아닙니다.
그저 마음을 열고 모두를 대할 뿐이죠.
잘 곳이 마땅치 않으면 남자 후배라도 재워줄 수 있죠.
김치가 떨어지면 남자라도 직장 동료라면 가져다 줄 수 있죠.
동네 아저씨가 술을 건네주면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니 덥석 받아 마실 수 있죠.
마음을 여는 게 헤픈 것이라면,
사랑은 헤퍼야 되는 게 맞는 듯합니다.
헤프지 않으면 어찌 사랑을 보여주고 또 할 수 있을까요.
사랑을 베푼다는 말보다 헤퍼야 한다는 게 더 정겹게 들립니다.
누군가에게 시혜를 베풀 듯 사랑한다는 것은 동등한 관계는 아닐 테니까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사랑은,
하는 순간부터 갑을 관계라고 하죠.
갑을 관계를 벗어나려면 서로가 헤퍼야 되지 않을까요.
처량하게 비를 맞고 살짝 고개를 든 나팔꽃을 보니 그 드라마가 떠올랐습니다.
동네 골목 아무 데나 핀 나팔꽃은 참 헤픕니다.
헤프게 피어 지나가는 이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줍니다.
비를 맞더라도 잠시 멈춰 눈에 담고 사진에 담습니다.
나팔꽃을 닮은 이를 떠올려보기도 하고,
나팔꽃을 닮은 사랑을 곱씹어 봅니다.
오늘,
마감 때문에 많이 피곤했나 봅니다.
이 더운 날 사랑을 말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