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나의 불안을 읽다

by 글담



카페에 가서 책을 펼쳐도 왠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산만하다고 말하기에는 뭔지 모를 불안으로 가라앉을 뿐입니다.

쓰기와 읽기가 되지 않는 날에는 그저 멍하니 앉아 있어야 하니 그저 잠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무료한 평일 오후,

무의미한 시간의 낭비.

어쩌면 이게 진정한 휴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몇 년 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곳에서 푸른 잔디밭을 바라보며 책을 찾았습니다.

그저 한가로이 잔디밭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는 여유를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여정은 비와 함께하는 나날이었습니다.

여행하는 동안 하루라도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었죠.

잠시라도 저렇게 광활한 하늘에 뭉게구름이 군데군데 떠 있고,

햇살이 대지에 쏟아질 때는 비 오지 않는 순간을 감사해하며 감상할 뿐입니다.

금세 생각이 바뀝니다.

책 따위 가방 깊숙이 들어 있어 잠이나 자라죠.

나른한 가을의 햇살과 구름과 하늘과 잔디가 있는데 뭐가 아쉬울까요.


여행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면서도 또 무엇이라도 해야하는 과정인 듯합니다.

두고 온 일상의 일들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일상을 떠났기에 뭔가 새로운 것을 얻으려 두리번거립니다.

눈동자도 굴리고

생각도 굴리고

마음은 한없이 너그러웠다가도 조급해집니다.

뭔가를 얻겠다는 강박은 뭔가를 자꾸 잊어버리게 합니다.

낯선 곳에서의 여유와 한순간의 깨달음은 부지불식간에 찾아올 텐데 말이죠.


숙소로 돌아와 뒤늦게 책을 꺼내 듭니다.

그러나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나의 불안을 읽습니다.

한낮의 한가로운 기분은 어느새 사라지고,

한밤의 불안한 기분에 사로잡혀 골똘히 그 불안의 실체를 파헤치려 합니다.

아, 생각해보니 여행의 끝이 다가왔군요.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 아쉬움과 또 마주쳐야 할 현실.

이게 불안의 실체인 듯합니다.

그러니 책을 읽어도 나의 불안만이 읽힐 뿐이죠.

그런데 오늘 왜 그때의 불안이 또 읽힐까요.

책을 읽고 있어도 좀처럼 책속이 아니라 내 속으로 파고 듭니다.

나의 불안을 읽는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갑니다.

아, 생각해보니 약 먹을 시간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