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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 산책

by 글담



요즘 날씨가 산책하기 딱 좋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천성이 발목을 잡고 문고리를 걸어 놓습니다.

그러다 나가볼까, 하고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어 밖으로 나섭니다.


한밤중 덩그러니 떠 있는 달처럼 홀로 피어 있는 장미도 근사합니다.

외롭다는 둥 고요하다는 둥 이런저런 상념보다 그냥 바라만 봅니다.

뭔가를, 누군가를 바라볼 때는 생각을 비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실체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듯합니다.

내 생각이

내 감정이

먼저 떠올라 색안경이 된다면 실체의 아름다움은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장미는 장미라서 장미입니다.

이 말을 뒤늦게 되뇔 때에야 조금씩 의미를 갖다 붙입니다.


여행은 다녀오고 나서야 여정의 순간이 주는 의미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길고 긴 여행을 다녀온 지 이삼 년이 지나자 조금씩 의미가 곱씹습니다.

사람도 방금 보고 뭐라고 틀에 가둬두는 것보다

얼마간이라도 겪어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서 멈출 때도 있어야겠지요.


오늘 본 장미에 대한 의미도 한참 뒤에나 떠올릴 수 있겠죠.

계절의 무상함이나

꼿꼿하고 도도한 느낌이나

홀로 된 외로움 등등.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지금은 붉은 장미가 나를 멈추게 한 시간에 머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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