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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해서 싫은 휴식이라니

by 글담



가을은 더위와의 싸움을 끝낸 뒤에 찾아오는 나른한 여운의 계절이 아닐까요.

갑작스레 찾아온 서늘한 기운이 정신을 차리게 하기는커녕

바뀐 계절에 어리둥절하다가 한없이 높고 파란,

그리고 투명한 하늘에 넋을 빼앗기곤 하죠.

그러다가 차츰 나른해집니다.


휴일이 연이어 찾아올 때,

나른한 기운은 텅 빈 동네의 적막함으로 더욱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한가로운 여유는 하루 동안이나 고작 몇 시간에 불과합니다.

그런 뒤에 이어지는 무기력과 허망한 기분에 빠져 거리를 바라봅니다.

괜스레 밤중 거리를 쏘다닐까, 하고 벗어 놓은 옷을 흘깃 쳐다 봅니다.

사람 구경이라도 하면 괜찮을까 해서요.


사람은 노동에 길들여졌습니다.

한가로운 휴식은 그저 재충전에 필요한 시간만큼입니다.

그러니 하염없이 늘어지는 시간을 못 견뎌합니다.

놀 줄 모르는,

쉴 줄 모르는,

또 생각할 줄 모르는 인간이 돼 버렸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어떻게든 생각을 하려는 과정입니다.

나른해서 싫은 휴식의 시간에 억지로 노동을 하려 하지 않고,

생각하고 글 쓰고 그제야 책 한 줄 읽으려 합니다.

아, 생각해보니 마감의 시간이 닥쳤군요.

쓰고 읽는 게 노동의 시간이 되는 순간입니다.


슬며시 책을 놓고 노트북을 덮습니다.

그렇게도 귀찮던 바깥 나들이를 하러 나섭니다.

책 한 줄 읽지 못하고 멍하니 바깥을 바라보다 나선 길.

어두운 불빛에 수줍은 얼굴로 지나가는 이를 바라보는 장미라도 보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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