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와 책 읽기, 수레의 양쪽 바퀴입니다
처음부터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세상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사람 사는 모습이 왜 제각각인지 알지도 못한 채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아무리 감성으로 가득 채운 감상적인 글을 쓰더라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노래하더라도 말이죠.
글쓰기 모임이나 강의를 할 때마다 책 읽기를 많이 이야기합니다. 모임의 경우에는 아예 책 읽기로 진행하는 중이라고 볼 수 있죠. 처음에는 대부분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독서가 좋은 것인 줄은 안다, 글쓰기 모임이지 독서토론 모임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이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역시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책을 좀처럼 읽지도 않으면서 글을 쓰겠다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기 짝이 없습니다.
읽기는 쓰기를 위한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거치지 않고서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습니다. 흔히 독서로 간접경험, 지식과 지혜의 습득 등의 효과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이러한 효과를 통해 자연스레 자신의 사고력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죠. 쉽게 말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민과 사색의 시간을 가진다는. 의미이죠. 이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콘텐츠와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읽기와 쓰기는 수레의 양쪽 바퀴입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이만한 것도 없을 만큼 딱 들어맞는 말입니다. 물론 외바퀴로도 갈 수 있습니다. 두 바퀴로 가는 것보다 불안하고 더디고 수시로 자빠지면서 말이죠. 그러다가 바퀴가 망가지기도 할 테죠. 바퀴 두 개를 장착할 수 있는데도 굳이 외바퀴로 가야할 이유가 있을까요?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지식 경쟁’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공감하고 싶은 메시지를 함께 나누려는 소통이자 품앗이인 셈입니다. 어설픈 지식 자랑을 하려고 독서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책을 읽지 않았거나 모르는 게 있으면 솔직하게 읽지 않았다고, 모른다고 말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상대방은 넉넉한 품앗이를 해줄 테고, 그 덕분에 내 안의 빈곳을 채울 수 있게 됩니다.
책을 읽을 때는 무엇보다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합니다. 몇몇 문장이나 의미만을 따로 떼어 놓고 외우거나 이해하는 것은 자칫 곡해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가끔 어떤 인용문을 가져와 설명을 하는 구절을 보면, 원래의 책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색다른 해석이나 독특한 관점이라기보다 책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럴 때는 단순히 해당 문장만 검색해서 실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죠. 문장만 검색하더라도 관련 내용을 함께 검색하거나 이중삼중으로 체크해보는 과정조차 거치지 않았으니 곡해된 의미를 실을 수밖에 없었을 테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글쓰기의 네비게이션을 곁에 둔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글이 막힐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주기도 하죠. 가끔 글이 풀리지 않거나 마땅한 자료가 없을 경우에 책을 뒤적거리는 경우처럼 말입니다. 또한 글감을 채워주는 논과 밭이자, 문장 표현의 보물창고이기도 합니다. 이 많은 역할과 기능을 하는 수단이 또 어디 있을까요.
● 왜 문학지망생들이 고전을 읽고 심지어 필사까지 하는 것일까요?
● 독서는 글쓰기 능력을 키워주는 자양분입니다.
● 대체로 사람들은 모국어를 쓰면서도 자주 쓰는 단어나 문장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 독서는 제한된 표현의 한계를 넘게 하여 표현력을 키우는 훈련을 하도록 만듭니다.
● 읽기는 다양한 배경지식과 세계관, 가치 등 새로운 것을 배우는 배움의 과정입니다.
● 자신의 생각을 가다듬도록 하는 거의 유일한 일상의 학습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 읽기가 배제된 어설픈 논리와 궤변의 글쓰기는 배설에 불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