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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12. 2022

1_ 부모님의 돈을 관리하게 되었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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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수가 되었다.

20대 중반쯤 건강이 좋지 않았다. 모야모야병 때문인지 아니면 몸에 다른 문제가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내가 아르바이트는 물론이거니와 놀러 나가는 것조차 어려워졌다는 사실이다. 집에서 밥을 해 먹고 동네 산책을 하는 기본적인 생활은 큰 문제없이 하는데 다른 친구들처럼 직장을 다니며 평범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병을 알기 전에는 잠깐의 아르바이트 혹은 주식으로 약간의 소득이 있었으나 그래 봐야 연 150만 원을 넘지 못했고 그마저도 건강이 더 나빠진 후로는 어려웠다.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았고 어머니는 그런 딸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을 많이 아파하셨다. 철근도 씹어먹으며 방방 뛰어다녀야 할 나이에 방구석에서 시들어가는 딸을 보며 이따금 돈 안 벌어도 좋으니 철없이 놀러라도 다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하지만 슬프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더 안 좋아지기만 했다.


근데 그 와중에 나는 툭하면 가족 보험료가 얼마나 나가는지, 신용카드 대금은 다른 통장에 관리하는 게 좋지 않은지 참견을 했다. 그런 내게 어머니는 집에 돈이나 관리하라며 부모님의 가계(家計)를 맡기셨다. 이거라도 시켜야겠다 싶으셨단다. 만날 희망 없는 죽은 생선 눈깔을 하다가도 돈 관리할 때는 눈을 반짝이는 나를 보며 건강할 적에 쥐꼬리만 한 아르바이트비로 CMA통장이니 적금 통장이니 만들면서 즐거워하던 모습이 떠올랐다면서.


그때부터 집 안에 모든 수입과 지출이 공유됐다.

근데 공유되는 건 돈만이 아니었다. 그들에 삶에서 한 발 떨어져 있던 내게 흐릿하게 보였던 가난 역시 나의 일상이 되었다. 그것에 들어서자 여기저기 빠짐없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모른 체 멀리서 부모님을 지켜보다가 부모님의 가계(家計)를 공유하는 일원으로 위치가 바뀐 탓에 가려져있던 것들이 드러난 것이다.


두 분의 노후는 생각했던 거보다 훨씬 가난하고 위태로웠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계셨으리라, 그 사실을. 나른한 오후 따뜻한 거실에 앉아 봉지 커피를 마시던 그 순간에 깔고 앉은 게 무엇인지를. 60살이 넘어서도 남의 밑에서 일하는 남편, 그리고 남편이 일하지 않으면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 가장의 실직에 대한 불안감, 일하고 싶어도 받아주는 곳이 없어 집안에 눌러앉은 본인에게서 오는 무력함, 나날이 오르는 물가와 보험료, 한 해가 다르게 약해지는 몸뚱이.


평온해 보이던 어머니의 tea time에 한숨이 섞일 때마다  편히 커피 한잔하는 이 행복한 순간에 웬 한숨~? 한마디 던지든 딸내미는 그제야 그 이유를 알았다. 멀리서는 평화롭게만 보이던 그 장면 속을 들어가 보니 바닥에 가시가 잔뜩이었다. 지금은 가끔 어머니의 한숨 위에 작은 한숨을 보태며 함께 차를 마신다. 당장 가시가 잔뜩이어도 행복한 순간은 챙겨야 하니까.


20대 후반에 나는 60대 부모님의 생활에 동승자가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동승이 아니라 기생이지만. 건강을 되찾았더라면 취직을 하고 거기서 벗어나 내 돈만 관리했겠지만, 아쉽게도 아직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인생을 어찌 늙어야 하는지는 잘 알게 되었다.

그것도 꽤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가도 부모님의 오늘 하루가 꽤나 서글픈 건 어쩔 수가 없다. 덕분에 서른이 넘어서도 노후에 조금 가난한 삶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기분으로 살아가게 되는지 실감 나게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부모님의 하루에 끼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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