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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13. 2022

2_ 일하러 가시는 아버지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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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더워져야 하는 거 아닌가 살짝 걱정될 만큼 시원했던 작년 5월에 어느 날, 경비 일을 하시던 아버지가 직장에서 잘리셨다.


며칠 전부터 새벽 출근길 아버지가 뱉어놓으신 무거운 한숨 소리에 잠이 깨곤 했다. 그러면 그날은 어김없이 무슨 일이 터질까 불안을 은 채로 하루를 보냈. 회사에서 슨 일이 생기신 걸까? 결국, 며칠 후 아버지 입에서 “회사에서 잘렸다."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한두 번 있는 일은 아니어서 이제는 좀 익숙하기는 하지만 언제 또 일자리를 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심란한 마음은 여전히 낯설기만 하다.


꾸역꾸역 60대 중반을 넘어가고 계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한숨 한 번 쉬실 때마다 서른 살이나 먹고도 무직인 딸내미는 마음에 죄책감이라는 돌멩이가 차곡차곡 쌓였다. 이따금 뉴스에서 터지는 경비원 폭행 사건과 여름 폭염이 무시무시할 거라는 기사는 또 다른 돌멩이가 되어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부모님 모두 일하지 않고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 때문에 좌절된 부모님의 꿈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일을 쉬시면 ‘그럼 우리 이제 어떻게 해…? 당장 닥칠 생활고 걱정에 불안과 짜증이 따라붙었. 아버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과 생활고에 대한 걱정 이 두 가지 간극에서 느끼는 더러운 기분은 늘 나를 비참하게 했다.


두 분 모두 이미 닥친 노후에 준비된 돈은 없다시피 했다. 이번 달 일을 안 하면 다음 달부터 끼니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 달 벌어서 한 달을 먹고사는 통에 평생 일을 쉴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의 실직 소식을 들을 때면 아버지가 쉬실 수 있으니 좋구나 하면서도 생활비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한 달이 지나고 조금 더워지기 시작할 때쯤 아버지는 집에서 가까운 곳에 취직되셨다. 그리고 정식 출근 이틀 전, 근무지에 대한 안내를 받고 오셔서는 한껏 들뜬 목소리로 보고 들은 것들에 대해 아내와 딸에게 이야기하느라 바쁘셨다. 덕분에 오랜만에 집 안에 활기와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기분이 좋았다. 아버지는 곧 할 말이 끝나자마자 근무 때 필요한 것들을 챙기시느라 작은 집 안을 바쁜 걸음으로 돌아다니셨다. 곧 집안조용해졌다.


‘준비가 다 끝나셨나 보다.’


무심코 문이 활짝 열린 아버지의 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쉴 새 없이 앉았다 일어났다 하시며 분주히 짐을 챙기고 계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다시 취직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살짝 들뜨신 듯한 모습과 그 모습에서도 가려지지 않는 고된 일에 대한 걱정 가득한 표정, 노쇠하신 아버지의 어깨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가장이라는 무게가 선명히 드러났다.


아무도 보지 않는다는 그 안심이 ‘척’을 하지 않게 해 주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아내와 딸 앞에서는 보인 적 없던 수심이 깊은 표정은 내 마음에 또 무거운 돌덩이가 되어 들어앉았다.


나이 예순여섯에 한 달가량 여기저기 면접을 보러 다니시면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낯선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버거운 업무환경에 부딪히시며 많이 힘들어하고 계신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내와 아픈 자식의 눈치를 보신다는 것과 처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신이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에 많이 힘들어하신다는 것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 괜찮아?”라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아버지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리는 날에는 방문을 닫고 몰래 눈물만 그렁그렁 한다.


언제쯤 내 아버지는 더울 때 쉬시고, 날 좋을 때 놀러 다니실까. 커다란 저택에서 계절마다 해외여행을 다니는 삶을 꿈꾸는 것도 아닌데. 그저 좀 안전한 환경에서, 적당히 일하고, 쉬어야 할 때 쉬면서 건강하게 사는 걸 바라는 것뿐인데 그게 이렇게나 어렵다. 앞선 긴 세월 동안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만한 돈을 마련하지 않은 탓이다.


나이 들어 돈 없고 능력 없어 고되게 사는 삶,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며 그쪽으로는 1초도 관심 두지 않던 그 삶이 내 아버지의 인생이었다. 차라리 내가 건강해서 내 인생 사느라 부모님의 이런 속내를 모르는 것이 나았으려나. 다른 자식들처럼. 그러면 나는 우리 가족이 그럭저럭 지낸다는 착각 덕에 안심하며 나름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을지도 모를 텐데 말이다.


즐거운 취직 소식과 함께 다시 고된 일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슬픈 마음이 얽히고설켰던 그날. 어느덧 저녁 식사 때가 되어 식사하러 오시라 하니 “알았다” 대답만 하시고는 한참을 나오시지 않던 아버지. 불 꺼진 방에 앉아 아버지가 하시던 생각이 혹시나 아픈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마음이 쓰인다.


부디 아버지의 새 직장이 무난한 곳이기를,

그리고 아버지가 무탈하게 일을 다니시기를 기도할 뿐이다.







※ 참고로 저는 무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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