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꽃구름 Jan 14. 2022

3_ 일하러 가시는 어머니

목차__ 上

.

.

살짝 더위가 느껴지던 초여름에 아침이었다.     

일찍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출근하시는 어머니를 보았다. 오전 7시 30분.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끌고 힘없이 버스 정류장을 향해 가시던 어머니. 멀리서또렷하게 보이는 축 처진 어깨와 종종걸음으로 버거운 짐을 들고 가는 그 모습은 내 가슴에 비수가 되어 꽂혔다. 그 순간 이 탁 막히는 듯했다.


어머니는 4년 전부터 도배 일을 하신다.

전에는 요양사를 하셨는데 내가 병에 걸리고 난 후로 마음이 많이 힘드셨는지 남을 돌보는 일이 버겁다며 직종을 바꾸셨다. 당시 내가 몸이 자주 안 좋았고, 언제 어떻게 아플지 몰라 시간과 요일이 정해져 있는 일보다는 원하는 날에만 할 수 있는 일을 원하시기도 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몸을 많이 움직이면서 활기차게 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하시더니 도배를 배우기 시작하셨다. 당시 어머니 연세는 50대 중반이셨다.


주변에서 말이 많았다.

누군가는 힘들어도 돈을 많이 버니 괜찮다고 하고 누군가는 그거 배워봐야 나이가 많아서 누가 써주겠냐고 만류하기도 했다. 막상 당사자인 어머니도 배운 만큼 써먹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하셨다. 도배는 젊은 사람도 쉽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다행히 학원에서 좋은 분들을 만나 공백 없이 일당 3만 원 보조로 일을 다니셨다. 그러다 1~2년 경력이 쌓이면서 작년부터는 일당이 10만 원으로 올랐다. 한 달에 3~4번 일할 때도 있고 보름 동안 일할 때도 있어서 월급은 한 달 평균 75만 원 정도.


어머니는 그 일을 꽤나 즐거워하셨다.

몸을 쓰니 건강해지는 것 같아 좋고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정신적으로도 좋은 거 같다면서. 하지만 나는 일이 끝난 어머니를 마중 나갈 때마다 마음이 무수히 짓밟히는 기분이 들었다.


땀에 절은 채 자기 몸뚱이만 한 무거운 짐을 들고, 머리에는 도배지에 바르는 풀이 군데군데 묻은 60대 어머니의 모습은 내 마음에 묵직한 돌덩이를 쌓기 충분했다. 얼른 어머니 손에 들린 짐가방을 넘겨받아 집까지 걸어오면서 지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안쓰러운 마음에 자꾸 보고 또 보고 무능한 나를 탓하며 슥슥 만져보다가 속을 상해했다.


집에 오자마자 쾌쾌한 땀내를 씻어내고, 힘든 만큼 뚝 떨어진 입맛에 밥은 물 말아 겨우 넘기시고, 고단함에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조시다가 멕아리 없이 잠에 드시는 어머니. 일이 즐겁다고는 하시지만 이런 모습을 보면 그 말이 무색하게 들렸다. 10살 넘게 차이 나는 아주머니들과 그 힘든 일을 하시느라 오늘은 또 얼마나 아등바등하셨을까….


어릴 적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네 식구가 생활하기 너무 빠듯하다며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면 늘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다. 결국, 제대로 된 경력도 쌓지 못하고 돈도 벌지 못한 채 50대를 맞이하셨고 소득을 늘리지 못해 노후 준비도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 한 해가 다르게 받아주는 일자리는 줄고, 몸은 노쇠해져 가는데 그제서야 어머니가 일을 나가시기를 바라시던 아버지. 젊었을 때는 멀쩡한 어머니 날개 다 꺾어놓으시더니 이제 힘없고 능력 없는 날개로 일을 하라신다. 그래서 어머니는 요양사도 하셨고 도배 일도 하셨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일찍 어머니를 자유롭게 놔두셨다면 어머니는 지금쯤 조금 덜 힘든 일을 하며 사셨을 테고 우리 집 사정은 지금보다 더 나았겠지. 남편 때문에 인생 고달파진 어머니를 보며 사람은 배우자를 잘 만나야 하는구나를 배운다. 그걸 이런 식으로 가르쳐준 아버지가 원망스럽다. 나는 어머니가 도배 일을 나가시는 게 싫다.


가끔 동네 아파트에서 도배하는 분들을 보면(보통 중장년의 남성) 눈시울이 붉어진다. 저렇게 건강한 사람들이 일하는 곳에서 작고 나이 든 내 어머니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늘 일이 힘들지 않냐고 여쭤보면 “이걸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 하지만 가끔 슬픈 눈을 하고서 “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한마디 하실 때면 자신의 삶을 비참하게 느끼시는 건 아닐까 걱정이 앞선다.


요즘은 일을 나가시기 전에 짐을 챙기시는 어머니 옆에 죄송한 마음 가득 채워 시무룩하게 앉아있으면 "괜찮다."라며 오히려 내 등을 토닥여주시는 어머니. 내 간절한 소원은 단 하나다. 어머니가 딸내미 덕에 호강하시면서 부족한  곁에서 평생 건강히 계셔주시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2_ 일하러 가시는 아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