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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19. 2022

7_ 한 달 생활비 95만 원이 불행하지만은 않은 이유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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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셋이서 95만 원 쓰고 산다는 글을 쓰면서 자꾸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주눅이 든 탓이다. 돈을 적게 쓰는 것이 비상상황이나 부모님의 3년 후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한 번 사는 인생, 미래를 위해서 당장 쪼들려 사는 게 그리 즐겁지는 않은 탓이다.


주관에서 벗어나 봐도 우리 집 소비 수준이 낮은 편이기는 하다. 일단, 남들 다 있는 자가용 없는 것부터 시작해서 외식, 생활 반경 등이 지인들에 비해 현저히 적다. “초라하지 않다, 적은 소비로도 감사하며 행복하기만 하다!”라는 말은 감히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다행히 지금은 이런 생활이 크게 비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분명 1년 전보다 오늘이 더 나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정말 비참했던 건 부모님이 병원에 갈 때 건강이 아닌 돈 걱정을 하고 아버지의 실직으로 소득이 끊기면 생활비가 없어서 절절매는 거였다. 오늘 당장 커피 1잔을 못 사 마시는 거? 그건 여기에 대면 코딱지 정도의 불쾌함일 뿐이다.


그럭저럭 잘 지낸다.

이 정도의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생활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내가 정한 재무 목표가 있고 그걸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겪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다 보니 지금 쪼들리는 건 견딜만하다. 끝이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 끝이 더 나아지게 하는 일이니까.


사실 지금 상황에서 소득을 늘리는 게 최선이지만, 건강 문제, 나이, 능력 부족으로 그게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차선택인 절약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견딜만하다.

빈손으로 커피 한 잔씩 들고 다니는 사람들 틈에 끼어 있어도, 자가용으로 서울이니 시골이니 훌쩍 떠나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도, 무슨 재미로 사냐는 도움 하나 안 되는 쓸데없는 남의 말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저금(비상금, 연금 납입을 위한)할 돈으로 부모님 더 맛있는 거 많이 드시게 하고, 친구들 만나 즐거운 시간도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절약에 대한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두 분이 노후에는 좀 쉬셨으면 좋겠고, 절약보다는 소비의 행복을 누리시며 즐겁게 사시는 모습 또한 너무 보고 싶은 마음으로 또 행동을 다잡는다.


만약, 내가 빈곤한 노후를 덜 심각하게 여기고 부모님의 돈을 관리하던 그때 현재의 즐거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저금을 줄이고 생활비를 더 여유롭게 썼다면 어땠을까? 그깟 10~20만 원 헤프게 쓴다고 인생이 더 나빠질 거 같지는 않은데.


하지만 그랬다면, 오늘은 오늘보다 더 가난했을 거다. 멀리 5년 뒤를 바라볼 것도 없이. 그리고 지금 비상금 통장에는 ‘0’이 하나 정도는 빠져있겠지. 아직도 갈 길이 멀다며 내쉬는 한숨은 늘어났을 테고. 여전히 부모님은 실직에 대한 불안감에 밤잠을 설치시고, 아플 때도 쉬지 못하시고, 누가 아프기라도 하면 사람보다 돈 걱정에 한숨 푹푹 쉬셨을 것이다. 대체 남은 인생 어찌 살아야 하나 발을 동동 구르면서.


불행한 삶이다.

그런 삶을 더는 살고 싶지 않다.

나는 생활비가 95만 원인 것보다 그게 더 싫다.


물론, 적은 생활비로 한 달을 사는 건 여러모로 힘든 일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건 그동안의 노력이 이미 좋은 결과로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는 거다. 그깟 커피 1잔이, 여행 1번이, 브랜드 옷 1벌이, 치킨 2마리가 비상금과 연금의 살을 찌운 덕분에 부모님의 일상에 점점 안전한 삶에 울타리가 만들어지는 게 눈으로 보인다.

 

그 덕분에 커피 1잔을 쉬이 사 마시지 못했던 과거는 슬슬 끝이 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피 1잔 사 먹는 것이 고민되지 않고, 치킨 1번 더 시켜먹는다. 비상금이 어느 정도 마련이 되면서 그동안 여기에 모으던 돈을 생활비나 연금 추가 납입으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보험 만기 되는 것들이 정리되면 생활비는 더 여유가 생길 것이다. 그러니 도저히 안 할 수가 없다.


그저 검소한 성품을 가지신 부모님께서 부족한 딸의 계획에 불평 없이 늘 잘 따라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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