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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20. 2022

8_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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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없으면 돈을 안 쓰면 되잖아?”


이따금 노후에 수입이 줄어든 이들이 생활비 부족으로 가난에 허덕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기사를 볼 때면 이런 말로 쉬이 빈정거렸다. 부모님의 돈을 관리하기 전이었다.


돈이 없으면 외식도, 커피도, 여행도 다 끊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옷과 가방은 안 사면 그만이고 평소 택시를 탔다면 이제는 버스를 타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평소 200만 원 쓰던 거 100만 원으로 줄이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싶었다. 무엇보다 돈을 버는 게 어렵지 돈을 쓰지 않는 건 그냥 내가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 쉬운 일이라. 그래서 나는 늘 내가 그런 상황에 부딪히게 되면 잘 헤쳐 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까짓 돈 안 쓰면 그만이니까.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의 생활에 동승하게 되면서 내가 합류한 곳에 돈이 발바닥도 다 덮지 못할 만큼뿐이라는 걸 알았다. 드디어 내게도 돈이 별로 없는 상정이 생긴 것이다. 드디어 돈을 안 쓰고 살기를 실천할 수 있는 순간이 왔다. 두구두구 두고두! 그 결과는~? 실패!


막상 쉽지가 않았다.

실제로 닥치고 나니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매년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계절별로 옷을 사시는 것도 아니고, 밖에서 간식거리 하나를 쉬이 사 먹는 것도 아니어서 나가는 돈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나름 살림을 하다 보니 사람이 그냥 먹고사는 것에도 품이 꽤나 들어간다.


병에 안 걸리려면 마스크 사야지, 아프면 병원에 가야지, 건강 관리 안 했다가 악화되면 병원비가 더 드니 먹는 것도 적당히는 챙겨 먹어야지, 더우면 에어컨 좀 켜줘야지, 추우면 난방 좀 틀어줘야지, 팬티에 구멍 났으면 새로 하나 사야지, 세제 다 떨어졌으면 하나 사야지, 그리고 또……. 뭘 특별히 하지 않아도 그냥 살아가는데 써야 할 돈이 있었다.


이미 생활비는 적게 쓰는 편이라 이걸 줄였다가는 세상에 생겨나는 그 무엇도 누리지 않고, 무언가를 바라는 작은 욕심 하나 그 본능조차 외면하면서 살아야 할 판이다. 어찌 보면 빈곤하게 문명에 발달을 거부하면서. 마스크 1개 사서 1년을 쓰고 다니고 아파도 병원에 안 가고, 김치랑 밥만 먹고살고, 더위나 추위 먹든 말든 에어컨과 난방 안 틀고 살고, 다 떨어진 옷 입고 다니고, 설거지는 더러운 게 그대로 남든 말든 물로만 하고 살 아도 살 수는 있으니까.


하지만 부모님이 평생 열심히 일하신 건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두 분 모두 평생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 일만 하시고, 알뜰살뜰 살아오신 거 아닌가. 그러니 조금 더 편하고 여유롭게 살지는 못할망정 빈곤에 가까운 삶은 멀리하게 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TV 어느 방송에 나오던 주변에 집 하나 없는 깊은 산속에 본인 먹을 식량 조금 말고는 지출이 전혀 없는 자연인처럼. 그런데 그런 삶은 우리 집에 웃음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적은 돈 때문에 빡빡한 지출을 계산하는 동안에는 인생의 무상과 무미건조함을 느꼈다. 명상이나 소유욕에서 벗어났을 때 느껴지는 행복이라든가 즐거움은 없었다.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안 쓰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현실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돈 없으면 없는 대로 살지 뭐~!” 말로 뱉기는 쉽지만, 막상 닥치면 그 삶을 잘 지내기란 결코 쉽지가 않다. 지금에서야 쉽게 내뱉을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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