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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21. 2022

9_ 나이 들면 돈 쓸 일이 줄어들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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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막연하게 그리 생각했다.

늙으면 돈을 덜 쓰게 될 거라고. 막연하게 나이가 들면 체력이 나빠지고, 몸에 힘이 빠지고, 총명함이 덜해지는 등등 뭐든 하락세로 들어서면서 나가기도 귀찮고, 입맛도 없고, 뭘 하기도 싫어지지 않을까 지레짐작했다. 주름이 자글자글해진 노인을 떠올리면 집에 들어앉아 TV만 보다가 하루를 다 보내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동안 평생 무언가를 먹어왔고, 보아왔고, 이것저것 해보았으어른이 되면 아기처럼 어지간한 것에 쉬이 흥미를 느끼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해서 50년쯤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인생에 무심함을 느껴서 맛난 것도 찾지 않고, 여행도 바라지 않고, 사람도 많이 만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그렇게 돈 쓸 일이 확 줄어들면 소득이 적어져도 살기는 힘들지 않겠구나 마음대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실제로 내가 중학생 때보다, 고등학생 때보다, 24살 때보다 부모님은 활기가 더 떨어지셨활동량도 줄어드셨다. 나들이는커녕 사람들과의 만남도 점점 드물어졌고 매년 가던 시골집은 1년에 1번으로 줄더니 이제는 1번도 갈까 말까 한다. 반대로 점점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었고, 외식 횟수는 여전히 적다. 전에도 지출이 많지 않았는데 갈수록 더 나가서 돈 쓰는 일이 줄었다. 그래서 내 예상이 맞는구나 했다. 나이가 들면 정말 지출이 줄어드는구나 했다.


하지만 막상 내 나이 한 살, 한 살 먹어보니 어떻든가.

고개만 쳐들면 세상에 놀거리, 즐길 거리는 수두룩하니 나이대별로 가격대별로 천차만별로 다양하다. 20대 때와 마찬가지로 두근거림을 느끼게 해 줄 만한 것들이 잔뜩이다. 세상은 넓고 문명에 발달은 환상적이어서 이거 다 누리려면 매일매일 60년은 더 걸릴듯하다. 인터넷에서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아직도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이 가득이다. 가보지 못한 곳은 또 얼마나 많은지 국내, 해외에 좋다는 곳만 다 가려고 해도 그것만 10년은 더 걸리겠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무수히 많다.


그런데 그동안은 그걸 잘 몰랐다.

내가 시선을 우리 집에 콕 처박았기 때문이었다. 노후에 무미건조한 생활을 하시는 조금 가난한 부모님의 영향도 컸고. 나이 든다고 해서 하루 1끼 먹어도 되고, 옷 아무거나 입어도 되고, 비누  쓰고, 문화생활 안 하고 살아도 되는 거 아니더라. 여전히 좀 더 맛난 것에 기웃거리고 즐거운 일에 눈길을 준다. 그 횟수가 조금씩 줄기는 하지만.


어쩌면 부모님이 입맛이 좀 떨어지고, 놀러 가는 것도 귀찮고, 재밌는 일에 흥미가 없는 듯하는 것은 내 사정이 어떤지 너무 잘 아는 탓에 스스로 그것들을 꺾어버린 줄도 모른다. 젊을 때는 텅 빈 주머니 사정에 별 관심 없지만, 나이가 들면 실업과 생계 걱정에 텅 빈 주머니만 보게 되니까. 일부러 여기저기 반짝이는 것에서 시선을 멀리하고 바라는 마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포기란 늘 속상함과 무기력을 돋게 한.


부모님은 여전히 하루 2~3끼 먹고, 휴대전화 없으면 안 되고, 추울 때는 두꺼운 외투부터 찾으시고, 맛있는 거 먹으면 행복해하시고, 놀러 좀 다녀야 살맛 나신다. 좋은 옷을 입으면 예뻐 보이는 것 또한 여전하다. TV에서 맛있는 음식이나 좋은 여행지가 나올 때 반짝이는 부모님의 눈빛이라든가 친구들과 맛집을 찾아다니기를 바라는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젊은 마음대로 살려면 돈푼이 필요하다.

돈푼은 적은 액수지만 나이 들어서는 노쇠한 몸과 취직에 어려움으로 그것 마련하기도 쉽지 않으니 젊어서 바지런히 돈을 마련해야  내 부모님은 그걸 하지 못하셨다.  바람에 자꾸 생활이, 삶의 수준이 쪼글쪼글 쪼그라든다. 그 돈푼마저 아껴야 하니 집 안에서 휴대폰과 TV만 보며 하루를 보내는 날이 늘었다. 


예전에는 활발한 생활은 하고 싶은데 못하는 것이 아니라 딱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으신 줄 알았다. 지금 이런 삶이 부모님이 원하시던 삶이라고 알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예쁘고 좋은 곳에 가는 걸 즐겼지만, 부모님은 그런 걸 별로 즐거워하지 않으시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돈 쓸 일이 줄어들 줄 알았다. 돈이 없어서 그리 사시는 건 줄은 몰랐다.


한 번은 시골에 다녀오신 아버지가 친구분 만난 이야기를 하시며 부러움을 뚝뚝 묻어내신다. 친구와 근처 유명 카페에 다녀왔는데 너무 행복했다고 하시면서 친구분은 은퇴 후 더 이상 일하지 않고 아내분과 만날 카페에 다닌다고 하더라며 부러움을 묻어내셨다. 그때 처음 알았다. 아버지도 나처럼 그런 걸 좋아하신다는 걸. 그리고 시골에도 자주 가고 싶어 하신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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