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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Jan 22. 2022

10_ 여전히 가난한 내 처지가 참 슬퍼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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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 9월쯤, 태풍이 막 지나가고 아직 비구름이 조금 남아있어 꿉꿉했다는 기억이 선명하던 날이었다. 아버지의 내의를 사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마트를 갔다. 어머니는 이미 며칠 전부터 아버지 내의가 다 낡아서 헤졌다며 동내 땡처리 가게(1층 매장에서 속옷이며 내의, 잠옷 등을 굉장히 저렴하게 파는 곳)를 전부 보고 다니던 중이셨는데 작년보다 가격이 비싸진 탓에 쉬이 살만한 것을 르지 못하셨다. 그러다 차라리 마트에서 사는 게 더 싸겠다며 길표를 포기하고 대형마트로 향하던 중 우리는 길가에 한 속옷가게 앞에서 멈춰 섰다.


10년도 넘은 대형 속옷가게였다.

나름대로 브랜드 있는 곳이라 가격대가 높은 편인데 그날은 입구에 3,000~5,000원 할인 상품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그 할인 덕분에 처음으로 가게 안을 들어가 봤다. 평소에는 비싸다는 이유로 밖에서 쳐다보기만 하고 선뜻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곳이었는데. 늘 안에 들어가 구경만이라도 해볼까 싶다가도 눈치 보며 가격표나 몰래 보다가 결국 사지도 못 할 거 괜히 봐서 뭐하느냐며 그냥 지나가고는 했다. 근데 그날은 할인 상품이 있었다. 그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다른 곳은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할인 상품 앞에 섰다. 기왕 들어온 김에 가게를 좀 둘러볼 만도 하건만 어차피 사지도 못할 비싸고 좋은 거 봐봐야 마음만 씁쓸할 거 같아서 조금도 눈길을 돌리지 않고 열심히 싸구려 속옷만 뒤적거렸다. 그런데 어머니는 나보다 더 용기 있었던 모양이다. 쭈그려 서서 5,000원짜리만 뒤적거리는 나를 내버려 두고 그 넓은 가게를 둘러보신  보면.


잠시 뒤 아버지의 내의를 골라두고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아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러자 곧 구경을 마치신 어머니가 매우 흥분한 모습으로 돌아오셔서는 남들이 듣지 못할 만한 소리로 내게 속닥이셨다.


“여기 땡처리 가게보다 싼 속옷도 있어!"


그러더니 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시고 그 싼 속옷이 있는 곳으로 나를 끌고 가셨다. 나는 끌려가면서 재빠르게 가게를 둘러보며 주변 물건들을 훑어보았다. 생각보다 속옷이며 내의 가격이 다양했다. 비싼 것만 있는 줄 알았는데. 덕분에 좀 편한 마음으로 가게 끝부터 끝까지 구경을 하다 5,000원짜리 내의 계산을 고 매장을 나왔다. 어머니는 기분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아휴! 이제 이 매장에 자주 들러야겠네~!”라며 한참을 들떠계셨던 걸 보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머니는 곧 슬픔을 가득 머금은 얼굴을 하시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10년을 넘게 이 앞을 지나다니면서 속옷 그게 비싸 봐야 얼마나 비싸다고 그거 무서워서 저 가게 문턱을 못 넘었나 몰라…. 나이 60이 넘어서 저깟 속옷가게가 뭐라고… 나도 참….”     


어머니의 서글픈 말과 서글픔 가득한 눈빛에 내 마음에도 슬픔이 가득 끼었다. 설마 진짜 이깟 속옷가게 한 번을 쉬이 못 올 만큼 우리 집에 돈이 없을까. 다행히 아직은 내의 하나에 돈 십만 원 한 번 쓴다고 당장 굶어야 하는 처지는 아니다. 다만, 더 나이 들어서 필요한 연금이며, 건강한 음식, 가족들 병원비, 툭하면 고장 나는 에어컨과 냉장고(희한하게 우리 집은 가전제품이 매년 고장이 난다. -_-), 때에 따라먹는 건강식품 등등… 돈 쓸 곳이 많다며 어머니가 그 돈을 아끼시는 것일 뿐.


꼭 비싼 속옷을 사 입어야 행복한 건 아니지만, 2만 원에 팬티 3장 정도라든가 5만 원에 내복 1벌 정도도 쉬이 사지 못하는 처지는 행복과 조금 멀긴 하다. 행복은 그 정도의 가격에는 관계가 있는 편이니까. 무엇보다 이 날 어머니와 함께 간 이 가게는 명품 속옷가게가 아니라 보통의 내의 전문 브랜드였다. 그 정도의 가게도 쉽게 드나들지 못하는 것은 분명 조금 서글픈 일이다.


“나는 우리 딸이 30대가 되면 이런 좋은 가게 들어가서 좋은 속옷쯤은 척척 사면서 살 줄 알았어.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그 정도 돈은 쉬이 쓰고 살 줄 알았어. 이것도 마음대로 못 사고 사는 건 좀 속상하잖니. 그래서 나는 그렇게 못해도 너는 그랬으면 했지….”


30대인 딸조차 그 가게 문턱을 쉬이 넘지 못하는 것이 서글픔을 배가 되게 하는지 저녁노을에 나지막이 흩어지듯 슬픔을 내뱉으시던 어머니. 그날 내 손에 들려있던 건 우리 가족이 입을 5,000원짜리 내의였다. 어찌나 톡톡한지 올 겨울에도 아주 잘 입고 있다. 싸게 잘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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