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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r 08. 2022

36_ 노후에 가난한 건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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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20대에 150만 원으로 사는 것과

60대에 150만 원으로 사는 건 같은 것일까…?


한 달에 150만 원으로 사는 것이 약간 가난한 정도라고 한다면, 20대에 이 정도 가난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학비를 제외한다면). 나는 20대에 40~60만 원의 아르바이트비로만 살아도 행복한 때가 많았으니까.


자주 즐거웠다.

싸구려 음료 하나만 있어도 친구들하고 함께 웃고, 위로하고, 파이팅 할 수 있었다. 쥐꼬리만 한 아르바이트비로 휴대전화 요금과 외식, 화장품, 의류·잡화·생필품 등 일상에 필요한 걸 전부 해결하느라 풍족한 생활을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래도 웃을 때가 많았다. 소득이 적은 게, 그래서 좀 가난한 게 그렇게 비참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물론, 생계 비용(주거비, 보험료, 기본 식비)은 부모님이 감당해주셨으니 무엇이 걱정이었겠냐만. 어쨌든 일상생활은 40~60만 원으로 해결했으니 소비 수준은 낮은 편에 속했다. 거기다 당시 네 식구 생활비는 아버지의 소득이었던 150~200만 원 정도. 내게 긍정 마인드가 얼마치 있는지는 몰라도 남들은 그렇게는 못 산다고 하는 우리 집 사정이 내게는 그럭저럭 괜찮은 정도에 속했다. 그래서 그때는 나중에 독립하면 한 달에 150~200만 원만 벌어도 괜찮겠다, 평생 이 정도만 벌어되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늙은 부모님의 삶을 바라보니 늙어서 가난한 건… 좀 많이 달랐다.


가난한 사람은 아무도 안부를 물어봐 주지 않았고, 가족들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외면당하기 일쑤였다. 무슨 말을 해도 무시당하고, 어떨 때는 멸시를 당하기도 하며, 나중에 병들어 아프기라도 하면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얼른 치우고 싶은 짐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젊을 때는 경제적으로 좀 힘들어도 대인관계나 활동면에서 크게 나쁘지 않은데, 나이가 들면 그런 것들이 확연하게 나빠졌다.  


내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부모님은 나갈 일도 꽤 있으시고, 사람들도 여럿 만나시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 횟수가 줄고 줄어 거의 없다시피 한다. 생활이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팍팍한 생활 탓에 돈 버느라 바쁘기도 했고, 누굴 만나면 돈이 드니 나가기가 힘들다, 아등바등 사는 기분이 좋지만은 않아서 사람들과 대화할 기분도 나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런 변화는 30살들어서는 내게서도 슬슬 나타나기 시작했다. ‘젊음’이라는 밝은 조명이 사라지고 삼십대라는 타이틀이 붙으면서 아르바이트나 직장에서 차순위가 되고, 더 이상 어리지 않은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에 시선은 전과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낀다.


나의 마음은 아직 어른이 되기에 한참 모자란데 나이는 어른이 되었으니 잘 곳과 먹을 것, 보험과 같은 안전장치 모두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경제적 독립, 내 인생을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늘어났고 그만큼 20대 때 쉬이 느끼던 행복은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준비한 게 없는데 한 달이 멀다 하고 늘어나는 기미와 쌩쌩한 에너지가 쭉 빠져나간 듯한 얼굴을 보며 하루하루 늙어간다는 걸 실감한다. 그 덕에 자꾸 여유롭던 마음은 좁아만 진다.


내가 살던 곳과 나라는 존재 그 자체는 그대인데.

변한 거라고는 나이와 경제적 능력뿐인데, 주변에 무언가가 점점 안 좋은 것들로 바뀌고 선택사항은 좋은 것보다는 별로인 것들만 남는 중이다. 이렇게 1년 그리고 또 10년이 지나면 나는….


노후의 가난은 참 비참하다.


이미 늙은 부모님에게서 “인생이 저물어간다”라는 세밀히 보게 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점점 힘없이 쳐지는 모습부터 웃을 일 하나 없이 무료하게 흘러가는 하루까지. 그렇게 활기차고, 즐겁고, 건강하던 것들이 시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비참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금 알게 된다. 물론, 그 속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겠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그리고 그게 쉽지가 않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끔 노후에 빈곤을 쉽게 말하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본다. 지금도 돈 없다면서 외식을 취미로 삼고, 카드빚을 내서라도 여행을 가고, 명품은 필수품으로 하나 장만하며 “오늘의 행복도 중요해. 미래를 위해 지금을 희생할 수는 없어!” 단호히 말하는 그런 사람들. 노후에 가난에 대해서는 그때 생각하겠다며 정말 가난해지면 가난하게 살면 그만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들.


하지만 그들에 말과 행동은 상당히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지금도 가난하게 살기 싫어카드를 긁어서라도 돈을 쓰고, 또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늙어서는 그러지 못해도 상관없다할 수 있걸까. 이미 집에서 매 끼니 꼬박꼬박 해 먹고, 놀러 다니는 횟수를 줄이고, 자가용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명품을 외면해야 하는 사정인데 지금은 안 되고 나중은 그게 될 거라는 말이 참 듣기 불편하다.


노후에 가난한 것과 젊어서 가난한 건 참 많이 다른 것이다.

노후에 가난한 건 정말이지 너무도 비참한 것이다. 주변에 닥친 노후 인생들을 바라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간단한 거 아닌가.

지금도 가난한 게 싫다면 노후에는 그게 더 싫을 거라는 건. 지금도 가난이 힘들게 느껴진다면 노후에는 더 힘들 거라는 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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