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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r 23. 2022

42_ 부모님의 사정을 모르는 건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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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굶어 죽더라도 애들한테 만큼은 폐 안 끼치고 살 거야. 내가 고생하면 고생했지 내 새끼 힘들게 할 수는 없지. 암, 그렇고말고!”


주변에는 이런 말을 하는 부모가 많다.

자신들이 가난하고 병들어도 자식에게만큼은 피해 주지 않겠다며 차라리 그때가 되면 홀로 그 가난을 끌어안고 죽겠다는 어른들. 실제로도 자녀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홀로 고단하게 사는 분들이 드물지 않다.


처음에는 내 이웃이기도 하고, 어머니의 지인이기도 한 그들을 보며 마음이 짠했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세월이 길어지니 지금은 그런 앓는 소리에도 마음이 쌩하기만 하다. 가난이 주는 비참함에 두려워 벌벌 떨면서도 자식들에게는 깔고 앉아 있던 돈까지 싹 다 빼 주면서 나는 괜찮다 하고 남들한테는 더는 못 살겠다고 하니까.


다만, 몸져눕거나 치매 같은 슬픈 병에 걸려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는 부모와 그 부모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는 자식들에 꼴을 볼 때는 마음이 좀 쓰인다. 부모의 사정을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지금보다는 상황이 덜 심각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 때문이다.


진즉에 부모가 위태롭다는 걸 알았다면, 자식이 손을 덜 벌렸을지 모를 일이다. 아니면 절벽 끝에서 간당간당한 사정을 알아채고서 미리 조그마한 보험 가입해드린 것이, 이미 어려운 상황을 알고서 혹시 안 좋은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해야 하나 미리 걱정하고 대비책을 생각해둔 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은 부모님이 내가 돕지 않아도 잘 곳 있으시고, 굶지 않으시고, 일 다니시니까 그냥저냥 잘 사시는 줄 아는 것이다. 두 분이 그동안 쉬지 않고 일하셨으니까 부모님이 껴안고 있는 폭탄이 없을 줄 알지만, 소득이 막 늘지 않는 이상 가난은 갈수록 심해지기 마련이라.  


그리고 그 가난은 놔두면 작은 폭탄 정도로 끝날 일이 10년 뒤 혹은 1년 뒤 그 폭탄은 핵폭탄이 되어 터져 버리고 마는 무시무시한 것이 아니던가. 우리가 그 폭탄을 인지하는 순간은 대부분 작았던 폭탄이 무럭무럭 자라서 핵폭탄이 되어 터져 버렸을 때다. 애 키우랴, 직장 다니랴, 경제적으로 여의치 않은 내가 부모님을 보살피거나 생활비를 해결해드려야 하는 상황이 일어났을 때.


노후의 빈곤으로 인한 문제는 그런 것이다.

일단 터지면 그 치명타가 부모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전가되고 그들의 삶을 통째로 뒤흔들어놓기에 충분할 만큼 어마어마하다. 겨우 충치 4개 치료하면 되는 정도로 끝나는 그런 소소한 일이 아니다.


물론, 그런 거 다 짜증 난다며 그 충격을 모두 부모에게 돌린다면 자식이야 그것이 문제가 아닌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자식은 고스란히 그 무게를 짊어져야 한다. 그리고 보통은 그 무게가 버거워 자신의 희생보다는 부모님이 그 무게의 대부분을 감당하며 삶이 평범한 기준으로 회복되지 못한 체 여생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고.


이뿐만이 아니다.

부모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은 자식에게도 큰 상처가 된다.

자식들도 어쩔 수 없이 나 사는 거 힘드니까, 나도 가정이 있고 애 키워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음이 괜찮은 건 아니다. 부모의 빈곤이 나를 힘들게 하면 자식은 그것이 원망스럽긴 하지만, 부모님이 그 빈곤을 숨기고 비참하게 돌아가시면 그건 또 그거대로 뿌리 깊은 상처가 되는 법이다.


그 꼴 보고 있으면 부모만 피눈물 나는 게 아니라 자식도 피눈물 난다. 그게 평생의 한이 되고 아픔이 되어 부모님을 먼저 보내고서도 아니면 내가 죽을 때가 돼서도 서럽고 속이 상해 눈물이 방울방울하다. 난 부모인 적은 없지만, 평생 자식이기는 하니까. 그것이 얼마나 자식에게 큰 상처가 되는지 아니까. 해서 아이가 없는 나도 내 전부인 아이에게 나라는 힘든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그 마음에 공감을 많이 하지만 그 마음이 애틋하다고 해서 그런 행동을 선택하는 것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정말 자식을 위한다면 비참하게 살다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줄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모습으로 살다 가야 한다. 자식 마음 아픈 건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거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며 자기 쪼대로 살다 빈곤에 허덕일 게 아니라. 자기 건강도 챙기고 노후 자금도 지키시면 자식들 평생 가슴앓이하지 않게 평범하게, 괜찮게만 살아주시는 것. 그게 자식인 내가 원하는 것이다.


하여 더 늦기 전에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그러니 만약, 노후에 어려운 처지에 처하게 되었다면 자식과 조금씩 의논할 필요가 있다. 문제가 제일 덜 심각한 지금 서로 간에 사정을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 이건 한쪽만을 위한 게 아니라 양쪽 모두를 위한 일이다.


부모·자식 간이라도 돈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사적인 부분이라 서로 노터치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모님의 노후 재정상태가 너무 엉망이거나 빈곤한 상태라면 그걸 너무 감추는 것, 그래서 자식이 그 상황을 모르는 것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차피 부모님의 사정이 불안정하다가 문제가 생기게 되면 힘들어지는 건 자식이니까.


통계청에서는 이미 노인 3명 중 1명이 빈곤이라 한지가 오래인데, 내 부모가 빈곤하다는 자녀들은 3명 중 1명이 아니다. 핵폭탄을 맞을지 모르는 자식들은 3명 중 1명인데, 그게 본인이라는 이는 퍽 드물다. 그렇다는 건 많은 이들이 자기 부모님의 사정을 정확히 모르고 있다는 거 아닐까. 째깍째깍, 폭탄은 점점 커지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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