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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구름 Mar 16. 2022

41_ 복 아주머니는 서러워서 울었다고 했다

목차__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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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롱또롱또로로롱 또롱또롱~♩

대통령 선거가 끝난 시각, 어머니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렸다.


“어, 오랜만이네~” 


한마디를 시작으로 꽤나 긴 통화가 이어지는 듯했다.

거실에는 어떻게 잘 지냈어? 그 사람들은 저 사람을 뽑지 않았을까? 어이고, 고생했네. 큰일 날뻔했어. 그래도 다행이다. 어디서 그랬는데? 병원은? 등등 어머니의 말소리가 간간이 떠다녔다.


“아이고. 복 아주머니 허리 다쳤데.”


어머니의 통화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주머니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복 아주머니는 10년도 훨씬 넘은 어머니의 지인이시고 내가 중학생 때부터 옷가게를 하고 계신다. 나는 수년 전 그 가게에 가서 몇 번 뵙고 몇 마디 좀 주고받았다는 날파리 같이 작고 연약한 인연을 물고 늘어지며 아~ 복 아주머니~?”하고 아는 척을 하는 중이다.


이제 나는 아주머니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머니는 매년 1~2번씩 꾸준히 만나며 인연을 이어오셨다. 그러다 내가 30살에 들어설 때쯤 연락이 점점 뜸해지던 찰나 코로나가 터지면서 서로 마음이 바쁘셨는지 연락도 만남도 없는지 1년 좀 넘었다. 그러던 중 복 아주머니에게서 먼저 전화가 온 것이다.


그리고는 늦은 새해 인사도, 코로나19에 무사했느냐는 안부아닌 대통령 선거에 다른 사람들은 누굴 뽑았는지 궁금하다 물으셨다고 다. 그러다 곧 작년 코로나19로 장사가 잘되지 않아서 다른 일을 좀 하다가 허리를 크게 상하셨다는 이야기, 병원에 입원해서 시술을 받았지만 영 낫지 않아서 지금까지도 치료를 다니고 계신다는 이야기. 거기다 코로나 백신 주사를 맞았다가 죽을 만큼 아팠다며,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며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단다.


“속상하셨겠네.”


잠자코 듣던 내가 첫 감상평을 던지자, 어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복 아주머니가 그 아픈 시간들 속에서 서러움에 홀로 많이 우셨다고 했다며 안쓰러워하셨다. 그리고 나는 어머니가 안쓰럽다고 하시는  다음 날까지 궁금해했다. 홀로 많이 우실 만큼 서러웠던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사뭇 궁금했다.


그동안 복 아주머니 가게는 장사가 잘 되었다.

그래서 큰 집이 없는 것도, 노후에 여유자금이 없는 것도 아니셨다. 자녀들은 모두 제때 결혼해서 손주까지 잘 낳아 잘살고 있다고 했다. 여러모로 우리 집도 그만큼만 되면 좋겠다 싶을 만큼은 사시는 걸로 안다. 내가 그 집 딸이라면 나는 평생 이런 글을 쓸 수 없었겠다 싶은 정도로는. 다만, 일을 더 나가셨던 건 잡초보다도 강인하다는 생활력 때문인 듯했다. 젊어서 가난으로 고생을 심하게 하셨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복 아주머니는 서러워서 많이 우셨다고 했다.

무엇이 우리 복 아주머니를 울게 했을까? 정말 아파서 많이 우신 걸까?? 나이 들고 아프면 서러우니까. 하지만 내 경험상 아픈 게 서러워서 우는 건 길지가 않다. 보호자가 넌 아무 걱정 말고 건강만 신경 쓰라며 극진히 돌봐주면. 곁에서 보듬어주는 이들이 그 서러움을 조금씩 걷어가기 때문이다.


‘혼자 많이 울었어’라는 말은 하늘이 무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는 지독한 외로움이라든가 몇 개월 살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를 상상하게 한다. 다행히 복 아주머니는 후자는 아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30년이라는 그  세월에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는 무수히 많으리라. 그만 호기심을 거두려는데 자꾸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행동을 보이는 이들이 많으면 슬픔이 반감된다는 건 그때도 마찬가지리라는 생각이 복 아주머니의 자녀들은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궁금하게 다.


만약, 그들이 고생스러움을 무릎 쓰고 매일 병원에 함께 하고, 반찬 다 해다 놓고, 손주들이 수시로 왔다 갔다 했다면… 어머니는 혼자 많이 울었다는 뒷말에 그래도 애들 덕분에 잘 지내고 있다며 웃는 복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며칠 전, 백신을 3번 다 맞으신 빈 아주머니가 코로나19에 걸렸다는 전화가 왔다. 같은 동네에 사시는데 약국에서 약 좀 사다 달라는 부탁 때문이었다. (철저히 비대면으로 전해줌) 


“먹을 거 챙겨줄까?”


어머니가 물으니 빈 아주머니가 질색을 하신다.


“아휴! 괜찮아요, 약 말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말아요! 벌써 혀니(빈 아주머니 친구분)가 온갖 반찬 해다가 집 앞에 두고 갔어. 이거 다 나을 때까지도 다 못 먹어. 그러니까 그냥 약만 가져다주면 돼요.”


다 쉬어버린 목소리마저도 어찌나 크던지 휴대폰 너머로 들려오는 그 당당한 거절부러웠다. 자식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저런 사람 3명만 있어도 아파서 서럽게 우는 날이 길지는 않겠구나 다. 의외로 어른들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중요하다는  실감한다. 가난도 사람 참 초라하게 만들지만, 주변에 찐 사람이 없는 것도 사람 너무 불쌍하게 하니까.


내가 아플 때 괜찮냐고 물어봐 주는 사람, 약 사다 줄까를 묻고 혼자 괜찮겠냐 뭐 도와줄 거 없냐며 챙겨주는 사람, 사무치게 외로울 때 고민 없이 전화할 사람, 행복한 일이 생겼을 때 즐겁게 나눌 사람이 있다는 거. 그게 사람을 참 부자로 만든다. 그들 덕에 위태로울 때, 위험할 때 든든하니 말이다. 좋은 친구 몇 명만 있어도 인생 성공한 거라는 말은 참이다.     


다음 날, 복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리고는 뒤늦게 자식들이 그동안 일하시느라 수고하셨다며 이제 좀 쉬시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하셨다. 용돈도 두둑이 주면서 놀러도 다니시라 했단다. 자식들에게 인정받은 듯하여 매우 기뻤고 자식들이 나를 저렇게나 위해주니 너무 행복했다고 하셨다.


하지만 복 아주머니는 돈 쓰는 것이 자꾸 불편했고, 그동안 놀아본 적이 없어 뭘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함께 할 친구가 없다는 말과 함께 멋쩍게 웃는 소리가 어머니의 휴대폰 밖으로 세어 나왔다.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의 사정은 모르는 걸까.

겨우 옅어지던 궁금증이 다시 조금 짙어졌다. 자식과 친구는 영 다르긴 하겠지만, 그래도 놀 줄 모르고 친구도 없다는 아주머니에게 자식들이 주말마다 와서 손주들이랑 같이 외식도 다니고, 유명지에도 다니고 하면 조금 덜 쓸쓸하지 않았을까 해서. 복 아주머니는 아픈지가 1년이 넘어간다고 했다.


만약, 복 아주머니에게도 좋은 친구가 있었다면 그날 전화는 선거 이야기가 아닌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며칠 전, 오랜만에 온 연락에 첫 이야기가 안부가 아닌 선거 이야기였다. 괜히 내 마음이 오래 싱숭생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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