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오후들을 모아 낸 이야기들. ' 어떤 오후 '
브런치를 시작한 지 몇 년이나 되었을까, 처음에 작가가 되었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두근거렸던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던. 그런 기억이 선연하다. 이런저런 일상 이야기를 써 나가다, 언젠가 카카오 채널에 퇴사, 이후의 삶.이라는 제목의 글이 오르게 되어 조회수가 올라가면서, 구독자가 늘게 되었다. 그런데도 글을 꾸준히 쓰기란 쉽지 않았다. 매일매일 부딪혀야 하는 먹고사니즘 때문이었을까, 설거지도 쌀을 씻는 것도 귀찮은 내가 글을 쓰기란 하늘의 별따기 같은 일이었을지도.
그러던 와중에,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줘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50일 내리쓰기 프로젝트였다. 내리쓰기란, 글을 멈추지 않고 즉흥적으로 주욱 써 내려가는 것을 말하는데, 커서에 잠시 멈춰 있는 날이 있더라도 매일매일 쓰기 위한 주제를 정하기로 마음을 먹었더니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이었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되더라. 그래서 좋아하는 것들로 주제를 정했다 기역부터 히읗까지, 가 내가 생각한 제목이었고, 실제로 ㄱ부터,ㅎ 까지. 좋아하는 키워드들로 매일매일 비슷한 시간에 내리쓰기를 했다. 그만두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조금 무리해서라도 글을 완성하는 것에 집중했다. 그게 어떤 것이든, 꾸준해야 한다고 생각하던 나날들이었고. 쉽잖은 여름이었다. 50일 동안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한 경험은 아직도 내게 큰 인상으로,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지? 하는 질문으로, 또한 지금의 '어떤 오후'라는 이름의 책으로 남게 되었다.
내리쓰기를 한 글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스물다섯 편 골라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그 해 브런치북에 응모도 했다. 그리고 보기 좋게 떨어졌다. 그리고는 잊고 있었다. 번아웃이 왔고, 이후 캄캄한 밤 같은 일상들이 계속되었다. 건강은 계속해서 악화되고 있었고, 다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조차 소거되어 가던 어느 때,
나는 내가 썼던 '내가 좋아했던 것' 들을 다시 정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글들을 모았다. 조각모음하듯 브런치를 열어 로그인을 하고 , 1년 넘는 시간 동안 로그인하지 않아 읽지 못했던 먼지 쌓인 글들을 고르고 뚝딱뚝딱 목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모든 이야기들은 찬란한 오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다행히도 나는 그 조각모음을 통해 정돈된 '나'를 되돌아볼 수 있었다.
그 정돈된 '나'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투고를 해보기로 했다. 자비출판 의뢰. 그리고 큰 유통사에 책을 유통해 보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마흔쯤 되면, 책 한 권쯤은 써서 낸 작가였으면 해. 하고 누군가에게 말했던 목소리를 복기하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나는 마음에 드는 출판사에 자비출판을 의뢰하게 되었고, 그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답변을 얻게 되었다. 이혼신고서를 작성한 날, 나는 계약하자는 출판사 사장님의 전화를 받았다. 울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으로 생각한다. 스타벅스 출근길이었는데, 남모르게 잠시 울컥해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3월에 출판계약을 했고, 이 책은 여름에 나왔으면 좋겠어요, 하는 의견에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생일날 출판하기로 결정하고 표지와 내지를 고른 것은, 보이스피싱 사기를 당한 이튿날이었다. 나는 너무 많이 울어 부은 얼굴로, 8월을 기다리겠노라고 이야기했던가.
그리고 8월 말. 드디어 '어떤 오후'가 출간되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작가'가 됐다. 내 글을 편집해 주신 준님은 시를 쓰는 시인님이셨는데 늘 나를 작가님, 이라는 호칭으로 불러주시곤 했다. 꽤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도 그 호칭이 나는 아직도 어색하고 신기하다. 그런 와중에 출간을 하고, 우연히 교보문고 주간베스트에도 이름을 올려 보고. 또. 어느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었다는 메시지도 전해 듣게 되고. 그리고도 누군가에게 '따뜻했어요.' 하는 인사를 받는. 그런. '작가'가 되었다.
브런치에서 내 책을 등록하면서, 굉장히 묘한 기분이 되었다. 내 내리쓰기의 결과물들이 교보문고의 매대에 있는 것이 신기하고 마음이 벅찼다. 오늘은 출판사에 들렀다가, 매대 위에 있는 내 책을 보기 위해 부러 교보에 들렀다. 에세이 신간 코너에 다른 책들보다 작은 판형으로 자리를 잡고 꼿꼿하게 어깨를 펴고 있는 책들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셨다고 했다. 그래서 새로 찍는 책은, 수정할 부분과 보완할 부분을 보완해 출간하기로 했다. 다음 주쯤에는 새로 정돈된 책이 또 새로 찍힐 예정이다.
책을 쓰면서, 아니. 목차를 정리하면서, 나는 누구라도 글을 쓸 수 있고, 그것이 특별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특별하지 않은 내가 책을 낸 작가가 되었듯이. 그것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는 생각을 했는데, 서평에는 따뜻한 위로의 말들이 가득 차 있어 또다시 마음이 따끈해졌다. 보통 좋은 마음들은 이렇게 선순환을 하곤 하지. 더워도 따뜻한 건 좋잖아요, 중얼거리던 언젠가의 내가 떠오르는 밤이다.
글을 쓰는 모든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앞으로도 내리쓰기를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특별하지 않지만 특별한 마음으로. 이미 당신은 특별하다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또,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당신도. 당신의 일상도.
부디 작은 것들에서 행복한 것들을 발견해 내는 그런 나날들이 계속되시기를.
광화문 교보문고 j3 에세이 신간 매대.
아버지 유품, fm2로 찍은 다중노출 필름 사진을 표지 사진으로 정했다.
어떤 오후의 초판. 예약구매 수량이 생각보다 많아, 배송을 기다리는 모습.
isbn이 처음 나오던 날. 생일이어서 엄마와 점심을 먹고 있었다.
표지 시안으로 마음먹었던 비컷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