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보호하는 유기묘, 내 가족, 시안이 이야기.
내가 '그' 작고 소중한 생명체가 [존재] 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사무치게 춥던 올해 2월 즈음이었다. 호박색의 눈을 가지고 캐러멜 색 털과 아이보리 색 털이 풍성하게 섞인, 마치 인절미 같았던 그 아이를 처음 본 건 한 sns 에서였다. 사진속의 그 아이는 임시보호자의 손가락 끝에 가만히 코를 대고 있었는데 짐짓 얌전해 보이는 품종묘구나, 싶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3세 추정, 가족 구함' 이란 문구에 망설이지도 않고 디엠을 보낸 것은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운명 같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 아이의 이름은 '시안'이라고 했다. 왜 시안이지요? 하고 여쭈니 페르시안의 페르, 를 빼고 부르다보니 시안이 되었다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마치 '페르시안' 이라는 자모음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피식, 하고 웃었는데 이후 시안이의 이름 뜻을 묻는 몇몇 사람들이 나와 비슷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참으로 찰떡 같은 이름을 지었구나, 하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시안은 대구의 어느 밤골목에서 구조되었는데, 많은 길고양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하고 비쩍 마른 상태에서 겉돌고 있었다, 고 구조하신 분이 이야기해 주셨다. 그 자리에서 닭가슴살 하나를 주니 그새 와구와구 먹어치우고 그 구조자님의 다리를 꽉 붙든 덕에 , 결국 그렇게 구조된 덕에 임보자분께 가게 되었다고 했다. 시안이를 보호하시는 분은 또 따로 계셨다, 그래서인지 결국 나는 세 분과 연락을 주고받게 되었다.
공고를 올렸지만, 성묘여서인지 쉬이 입양하려는 사람이 없었다고, 3개월동안 한 번도 입양 문의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들으면서 나는 조금 숙연해졌다 .
'아이가 6키로그람정도 나가요.'
3세 추정이라는 것 의외에, 처음 알게 된것은 아이의 무게였다.
그 때 나는 3월까지 한창 가구와 가전을 정리 후, 이사를 할 준비를 하고 있던 차였다.
때문에 우선 2월에 안락사 예정이었던 그 아이의 입양서를 먼저 작성해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3월 말에 이사가 예상되어 있었고, 그 전엔 건강상 문제로 퇴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5년 10개월동안 근무했던 스타벅스를 퇴사하면서, 나는 천천히 그 아이를 맞을 준비를 하게 되었다.
3월 25일. 미처 이삿짐이 다 정리도 되기 전인 작은 오피스텔에 발을 들인 너는, 가장 먼저 내 실수로 사 버린 아주 작은 화장실을 자기 것인 양 사용했다. 그러더니 캣타워를 이리저리 둘러보며 주변 공간을 살폈다. 페르시안다운 품격으로 우아하게, 천천히.
'여기가 내가 살 곳이구나.' 하고 발걸음을 이리저리 익숙한 듯 옮기는 너, 그렇게 나는 너를 처음 만났다.
시안이를 들이기 전부터 들이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고양이'라고 검색하면 나오는 고양이 관련서적을 전부 읽는 것이었다. 나는 '너'에 대해서 알아야 했지만, 그것보다 '고양이' 라는 개체의 습성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해야 했다. 먹이는 사료를 메모하고, 습성을 메모하는 수첩도 하나 만들었다. 다행히 너는 내게, 내 공간에, 자연스레 스며들었고 집에 온지 3일만에 침대 위에서 애옹거리는 애교쟁이가 되었다.
일을 쉬면서 고양이를 돌보는 일상은 참 달큰했다. 루틴에 맞추어 사냥놀이를 해주고 츄르 주기, 밥그릇, 물그릇 갈아주기. 화장실 치워주기, 간식은 꼭 보상으로 줄 것. 나름의 습관을 들여가며 기르다보니 시안이는 어느 순간 때가 되면 알아서 나를 재촉하는 똑똑한 녀석이 되어 있었다.
시안이와 풍경같은 평온함을 만끽하던 어느 유월, 의도치 않게 금융사기를 당해 큰 금액을 잃게 되었고, 퇴직금의 4.5배에 달하는 큰 금액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송금하고 네 앞에서 주저앉아 울던 밤. 너는 내 오른팔을 꽉 물었었지. 놀아달라며 떼를 썼었지.
나는 울면서 낚싯대를 흔들었었다. 그러다 정신이 퍼뜩 들었겠지. '이 아이를 두고 가면 이 아이는.?'
시안이, 너는 장난꾸러기였지만 사냥할 땐 언제나 눈이 빛나고, 식탐이 많아 봉지를 뜯는 소리만 들어도 자기 간식인 줄 알고 달려들었으며, 오랜시간 집을 비우고 돌아오면 꿇어앉은 내게 오랜 시간동안 애정표현을 하는 애교 많은 고양이다. 손발톱을 깎는게 너무 어렵고, 미용을 시키려 근처 고양이 미용실에 데려갔더니 내 왼쪽 팔목에 은하수를 닮은 흉터를 남기는 호기로움도 갖춘 너. 털을 다 밀고도 사랑스러운 너의 얼굴을 보며 사랑해, 소리내어 말한 적도 여러번이었다.
너는 네가, 나를 살린 걸 알고 있을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살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며 엉엉 울던 내게 얼마나 큰 원동력을 주었는지
너는 아마 모르겠지.
오늘 아침에는 펑펑 울던 내 팔을 꽉 물던 네 야무진 표정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너를 보호하고 있다. 너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어떤 것보다 이게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출판사 미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 앞까지 마중을 나올 너를, '어떤 목소리' 로 나를 반겨줄 너를, 이제 나는 안다. 네가 내 가족이고, 내가 네 가족인 것을.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 가만히 있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되던 때가 있었다. 너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나 혼자 그렇게. 그래서 고맙다. 네가 내 위안이어서, 내 가족이어서. 한편으로는 네 언어를 더 이해하고 싶고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끝도 없이 알고 싶은 내가 '여기에 있다.'
앞으로도 그 묘,한 궁금증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언제건 '시안아' 부르면 재잘거리는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를.
지켜야 할 것이 하나 더 늘었네.
조용히 중얼거리며, 나는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