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없을 것 같았던 이혼.
농담이지? 하고 친구는 물었다 나도 농담이지. 거짓말이야, 라고 받아치고 싶었다. 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표정의 그녀가 잠시 말을 멈췄다 . 나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게. 그렇게 됐어.
조금의 적막이 지났을까, 갑자기 친구의
목소리 톤이 조금 올라간다. ’아냐 얘 잘 됐어 요즘 세상에 이혼이 무슨 흠이라고.‘ 애써서 나를 위로할 표현을 힘껏 찾는 친구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게 큰 일이라는 반증을 뇌주름에 새기는 기분이다.
4년 . 짧다면 짧고 길었다면 긴 연애기간이었다. 연애 중 나는 상대방에게 헌신적이었고 누구보다도 열정적이었다. 서른이 되어 좋아하게 되는 사람은 무언가 다를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말도 없고 숫기도 없고, 고맙다 미안하다 표현조차 못하는 그가 조금씩 변한 모습을 보여줄 때마다 나는 내심 기뻤다. 선생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을까.
결혼을 하게 된 것은 특별한 확신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같이 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였고 그게 다였다. 연애 내내 지루해지지 않는 그의 유머같지 않은 유머나
위트를 보며 나는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같은 유치한 생각따윈 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사회 때가 덜 탄, 겁 많은 회피형 남자일 뿐이었다. 결혼하자는 말도 없이 결혼식을 올렸다 뜨거운 여름의 대구에서 상견례를 한지 9개월 만이었다.
나는 결혼생활의 첫번째 조건을 각자의 개인성을 존중하는 데에 두었다. 각자의 지출을 따로 관리하고 사생활엔 간섭하지 않는 대신, 집에 있을 때는 서로가 일순위가 되는. 그런 결혼생활을 원했고, 그도 같았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필요로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고 그가 집안일을 아주 어려워하고 귀찮아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나는 그것만 제외하면 모든 것이 좋다고 말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집을 돌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가 그것을 싫어하면 좋아하는 내가 조금 더 움직이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다 스타벅스에 입사하면서, 정확히는 수퍼바이저에 승격하면서, 늘어난 근무시간과 확연히 달라진 업무강도에 시달리기 시작할 때부터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물건은 쌓인 채로 분리수거를 기다리고 있었고 싱크대에 그릇이 있으면 바로바로 설거지를 해 엎어두던 나는 그런 에너지가 들어간 일들을 미루는 데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우연히 먹기 시작한 우울증 약은 한 두알씩 늘어났고 일상의 어느 부분에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건드리지 않으면 집은 변화하지 않았고, 분리수거 좀 해 줘, 같은 부탁조차 에너지로 치환되는 삶을 꾸역꾸역 살아내면서 나는 남편에게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그저 괜찮은 줄로만 알았으니까.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어느날은 주말이 지나고 나서도 고스란히 씻기지 않은 채 누워있는 접시를 보며 나 같아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쉬는 날조차 맞추기 어려운 나날들. 서로의 하루를 궁금해하는 순간들도 조금씩 옅어져 갔다. 아플 때 내 스스로가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을 보면서, 요시모토 바나나의 둘이어도 쓸쓸할 수 있다는 문장이 생각났고 그게 가슴 가운데를 묵직하게 눌렀다. 그는 더이상 나를 궁금해하지 않았고 나조차도 그게 이상하지 않았다. 연애 4년에 결혼8년차. 그가 이미 내게서 마음이 떴다는 것을 나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척했는지도.
11월, 그가 스스로 자신은 성인 adhd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병원에서 받았다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이대로는 함께 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지 않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가며 그 시간을 의심과 의문으로, 가끔은 눈물로 보냈다. 무슨 일은 없었지만 무슨 일이 있었던 늦가을이었다. 나는 그에게 너의 눈은 나와의 앞날을 그리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말을 덧붙였다. 나도 마음이 뜬 사람과 평생 결혼생활을 할 수는 없다. 잘 생각해보고 다시 이야기하자는 결론을 냈다. 내가 필요할 때 너는 어디에 있었냐는, 그런 이야기를 꺼낼 즈음에 잠깐 눈물이 고였다. 그게 다였다. 괜찮아 보이던 내가 괜찮지 않고 괜찮아 보이던 그가 괜찮지 않았던 것. 그 버튼을 내가 먼저 누른 것 뿐.
상견례를 하기 전, 마땅한 프로포즈를 받지 못했던 기억이 무심코 났다. 아주 무심하게. 결혼의 준비나 결정은 모두 나의 질문으로 시작해 뭐 괜찮아, 하면 싸울 일 없이 정해졌다. 결혼식 준비할 땐 다들 싸운다던데 나는 편하네 하고 , 그때의 나는 허허 웃었다. 바보같은 일인 줄도 모르고.
혼자 자유로이 살아야 할 사람을 구태여 붙잡은 걸까 하는 부채심은 끝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어쨌든 서른의 나도 이십대 후반의 그도, 모두 어렸을 때의 일이다. 되돌아 곱씹을 수는 있어도, 시간을 돌릴 수는 없다. 나에게 유난히 무심해 보이던 그의 쿨함. (이라고 생각했던)이 나는 좋았다. 그걸로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변덕스럽고 쉽게 질리고 늘 재미있는 걸 찾는 나에게 딱 맞는 상대라고 나는 쉽게 착각했다. 모든 결정을 한치의 오차 없이 내가 하고 있다는 것도 잊은채.
책상 위에는 며칠째 합의 이혼 서류가 놓여 있다. 프린트물 같은 건 귀찮아하던 그가 직접 뽑아온 것이다. 어려운 말들이 논문처럼 인쇄되어 있다. 강조된 것은 제출할 서류 , 그리고 빈칸뿐이었다.
그는 끝까지 우리 이혼하자. 는 말은 하지 않았다. 회사 근처의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을 뿐. 나는 화가 났지만 화를 낼 힘조차 잊어버렸다. 모든 것이 내 결정이었으니까. 모든 잡음은 다 나로부터 비롯된 것인데. 그가 데려갈 사랑앵무 둘에게 밥을 주며 앵무새는 네가 데려갈 거지? 하고 아무렇잖게 물었던 밤이 생각났다.
집에 혼자 있다 보면 부유하는 먼지처럼 쌓인 시간들이 보인다. 남아있는 설거지 그릇을 보면 어디서부터 잘못됐나 하는 답도 할 수 없는 생각이 든다. 남은 감기의 잔기침을 하며 목이 바싹바싹 마르는 오후. 하루종일 잠이 오는 탓에 꿈 안의 악몽을 액자삼아 오후를 버리면서 나는 순간이 어서 지나가기를 , 지나가기를. 그렇게 앙망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꿈을 꾼 게 언제였더라.
오늘 아침은 하릴없이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았다.
부질없고, 부질없었다.
곧. ’그렇게 될 일‘을 준비하고 있다.나는 괜찮지 않지만 괜찮아 질거라 믿어야 한다. 그 믿음 없이는 오늘을 버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2024년, 참 많이 아팠다. 몸도 마음도. 잘 지나가렴, 다 지나가렴. 잘 가렴. 나는 손을 흔드는 사람처럼 거울 앞에서 멍하니 내 얼굴을 쳐다보며 내 미간 사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눈빛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