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통에 긁히고, 직각주차에 긁히고.
스무살 때 인생의 선배로 여기던,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정말 '어른' 같던 어른에게 면허가 있는지 여쭈었던 적이 있다. 그 때 그 분께 '내가 필요하다고 느낄 때 따려고 아직 안 땄다.' 라는 말을 들었었는데, 어릴 때였을 때인데도 그 말이 참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서 스물이 넘어 전부 면허를 따고 차를 마련하고, 할 때도 나는 부러 면허를 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분의 마인드와 같은 마음을 갖고 있어서였는지 뭔가 스스로 차를 마련할 수 있을 때, 그리고 필요성을 느낄 때에 면허를 따고 싶다고 생각했고 20년 후에도 나는 무면허자인 채로 살았다. 특별히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했다. 스타벅스 시간제 근무를 하면서 면허를 따기란 하늘의 별따기처럼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리서 드디어, 퇴사를 결심한 이후 집을 옮기고 생활을 바꾸면서 봄쯔음 슬슬, 이제 면허를 따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마련해두신 , 함께 타자. 고 사두신 새 차가 있었고 이제서야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해서 면허를 따려고 검색을 시작했는데, 집 근처 학원을 찾는 것부터 난항이었다. 마흔 둘 생일을 앞두고도 이런 것에 어려움을 느끼다니. 성인인데, 하는 생각을 하니 코끝이 간지러웠다. 겨우 학원을 정하고 처음 학원에서 학원비를 결제하고 강의를 들을 때도 여긴 어디, 난 누구 같은 느낌으로 맞이한 면허의 세계. 필기시험 전에 앱을 받아 핸드폰으로 문제를 풀어보면서 뭔가 새로운 퀘스트를 하게 된 것 같아 두근두근한 마음도 함께 들어 그나마 다행이었을까.
필기는 수월하게 붙었지만, 기능시험부터 서서히 패닉이 오기 시작했다. 도로주행 시험을 치기도 전인데 나는 직각주차 코스에서만은 이상하게 입을 꾹 다물고 미동도 안 할 것 같은 사람처럼 긴장해서 멈춰서곤 했다. 요령을 배웠지만 핸들링은 쉽지 않았고 브레이크와 악셀레이터가 늘 헷갈렸다. 꼭 주차 지점에서만 그랬다. 두어번에 시험을 붙어 도로주행 시험을 나가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축하를 하는 게 다였던 나는 결국 네번만에 직각주차에 성공했고, 악셀과 브레이크를 구분하는데 익숙해졌지만 가장 중요한 도로주행 시험이 남아있었고, 추가시험비를 세번이나 결제하면서 주차에 발발 떠는 겁쟁이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도로주행 시험을 처음 나가던 날,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했다. 그래서 솔직히 한번만에 이제 면허를 따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찰나, 코스 마지막 유턴지점에서 핸들을 돌리면서 악셀을 힘차게 밟는 바람에 3점이 모자라 화려하게 도로주행 시험비를 날려먹으면서 이런 바보같은 경우가 있나, 부끄럽고 창피했었다. 그대 옆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노래라도 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두번째 도로주행 시험이 있던 날 새벽, 많이 울어 퉁퉁 부은 얼굴로 시험장소로 갈 때, 옆에 앉은 학원 선생님이 내게 얼굴이 왜 그렇냐고 물었을 때. 나는 ' 새벽에 금융사기를 당해서 6000을 잃었어요. ' 하고 담담하게 말했는데, 갑분싸된 분위기를 어찌할 수 없던 기억이 생생하다. 머리가 차갑게 식은 상태였기 때문에 운전이 아주 잘 됐고, 하필 날씨조차 기가 막히게 좋았다. 80점으로 도로주행 시험을 합격하자 옆에 앉으셨던 선생님이 내 손을 꼭 잡으면서 '용기를 잃지 마세요!' 라고 말씀해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시트콤 같다.
이제 실전을 해봐야지! 라고 마음을 먹기엔, 여름의 나는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출석하는 절차도 거쳐야 했고, 출간될 책을 위해 출판 미팅도 해야 했으며, 집에서 멍하니 스스로를 자책하는 일도 마다 않고 해야 했다. 운전을 해 보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사람이 무서운 채로, 스스로가 무서운 채로. 그렇게 여름이 하릴 없이 흘러갔고, 급한 불을 끄고 당장 눈 앞에 있는 것들을 해결하고 나서야 이제 슬슬 주차연습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밀려들었다.
병원에 가는 길, 두어번 정도의 운전 연수를 엄마와 함께 해 보았다. 운전에는 크게 문제가 없었으나 역시나 '주차'가 문제였다. 문제는 문제다. 문제가 아닌게 되지 않는다. 문제라고 '인정'하는 순간 문제가 되는 것이고 주차는 여전히 내게 가장 두려운 문제였다. 두 번째로 차를 몰고 병원을 다녀오던 길, 주차장을 지나치면서 나는 길가에 서 있던 쓰레기통에 차의 뒷 면을 드드득 긁었다. 악셀을 시원하게 밟는 내 옆에서 벌벌 떨고 계시던 어머니는 얘, 너 안 되겠다! 하고 차를 다시 가져가셨다.
그러고는 슬슬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나는 다시금 운전 생각이 났다. 마침 집의 주차장이 6층까지 있고, 주차라인이 넓은 편이라 주차 연습을 하기에는 우리 집 주차장이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같은 생각을 하셨는지, 스페어키를 내게 맡기고 주차 연습을 해 보라고 하셨기에, 저번주부터 나는 슬슬 주차 연습을 해 보기 시작했다.
첫째날 주차연습 하던 날은 얼기설기 얽힌 목걸이가 풀리지 않아 개고생을 했던 날이었다. 오전 12시 쯤이었는데 일요일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던 날이었고, 주차 연습을 하다가 후진하면서 나는 기둥을 또 한번 콩. 박아버리고 말았다. 범퍼가 구둣점 모양으로 찌그러진 것을 보고 다음날 어머니께 제대로 고해야겠노라고 생각하니 머리가 조금 아팠다. 이후 차가 좀 찍혔다, 말씀을 드렸더니 이미 쓰레기통 사건 때 한 번 긁었으니 괜찮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느는 거지 뭐' 라는 말을 들으면서 긁힌 차처럼 내 마음도 지익 지익 긁히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운 내 차.......... 아니 엄마 차.... 아니 내 차.
두번째 주차연습은, 무서움에 1주일 지난 이후에 하게 되었다. 오후 두시쯤이었는데, 그 날 처음으로 후방카메라를 제대로 보고, 핸들을 꺾고, 기어를 자연스럽게 바꾸는 법과 거리감을 보는 법을 익혔다. 양 옆에 차가 있는 곳에도 주차해 보고, 한 층 올라가서 양쪽이 다 빈 곳에 주차를 해 보기도 하고. R과 D기어의 변속을 줘 가며, 핸들을 반대로 돌리던 내 습관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그 때가 되어서야 나는 아 이제, 주차 연습을 좀 해야겠다. 그럴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와 오늘. 처음으로 혼자 주행을 했고, 혼자 주차를 해 보았다. 언어학습의 스텝을 밟아 올라가듯 그렇게. 어제는 폭우와 함께 자유로 진입에 성공했고, 오늘은 11시 방향 차선에 익숙지 않아 진입금지 라인으로 들어가려다 다른 길로 빠져 좁은 시골길을 5분 넘게 에둘러 달리기도 했다. 어제는 오후 장맛비같은 빗속에서, 오늘은 해지는 차 안에서. 기후의 변화무쌍함을 실감하며 나는 운전을 온전히 스스로 해냈다. 이미 했어야 하는 , 그러니까 이미 할 줄 알아야 하는 것을 너무 느즈막이 알게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조금 머쓱한 기분도 들었지만 확실히 조금 여유가 생긴 것을 보면서 스스로가 대견하다는 생각을 한 것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것 같다. (웃음)
운전은 내가 알게 된, 그러니까. 이제사 내가 알게 된 새로운 세계다. 경험은 재산이라는 내가 좌우명처럼 사용하는 그 말을 빌려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운전에 대한 경험치를 쌓고 있는 것이겠지. 아직은 90키로 제한인 고속도로에서 80을 겨우 밟는 게 다이지만, 언젠가 자연스럽게 핸들을 돌리고, 좌 우 옆을 자유자재로 봐가며 익숙하게 운전을 할 수 있을 때가 오겠지.
쓰레기통에도 긁히고, 직각주차에도 긁히며 여기까지 왔지만 나는 내심 앞으로의 내 운전생활이 기대된다. 조금 천천히 가더라도 오래, 은근히 타는 장작불처럼 그렇게 운전에 익숙해지면 참 좋겠다. 누군가에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겠지, 하면서 나는 조금 비뚜름하게 주차된 내 차를 보면서 빙긋 웃었다. '남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조금은 긁히더라도 어찌되었든 여러 가지 기억들이 생기기를, 하고 바라게 된다. 차 뒤 쪽의 '초보운전' 딱지를 떼고 싶어지는 나날이 온다면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