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키토 전시에서 받은 한 줄의 위로.
얼마 전, 알렉스 키토라는 작가의 사진전을 보고 왔다. 잘 모르는 사진가였는데도 어쩌다가 티켓팅을 해 두고는 거의 잊고 지내다가 마지막 날이 다 되어서야 전시장을 방문했다. 그라운드 시소, 서촌지점은 가보았지만 성수점은 처음이었는데. 새로 지어진 곳인지 그런지 공간감이 독특하고 인상적이었다.
전시를 보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전엔 날을 정해 두고 갤러리 투어만 하는 날들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기력도, 그걸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도 부족할 것만 같다. 과거가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 슬프면서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전시의 시작부터 목가적인 풍경들이 마음과 눈을 사로잡았는데, 유난히 마젠타를 강조하거나 가운데 히스토그램을 뭉그러뜨린 듯한 독특한 컬러들이 시선을 붙잡았다. 어떤 것은 선예도가 너무 강해서 사진이 자글자글해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가우시안 블러*를 쓴 것처럼 흐릿했다. 전시된 작품들을 보면서 느낀 것은 작품의 서사가 향하는 키워드가 비교적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그건 바로 '여정'이었다.
여행과 여정, 그리고 그러면서 만난 세계들에 대해, 알렉스 키토는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간에 영상을 상영하는 곳이 있어 잠시 앉아 그의 사진 세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는 사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진가였는데 하고 있던 일을 전부 그만두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고 했다. 여러 군데를 여행하면서 원하는 만큼의 사진을 찍고, 꾸준히 담다 보니 스스로의 작품을 '판매' 하기까지 이르렀고, 그로 인해 자신이 사진을 시작한 것을 긍정하게 되고, 누군가에게도 '당신도 할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 영상을 보고 난 이후, 키토의 작품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건 그 사람이 전하고자 하는 가치가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책을 집필한 작가지만, 아직도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할 정도로 일상적인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의 목차를 엮을 때는 이 일상적인 글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다른 경험으로, 다른 느낌으로 가 닿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당신도 글을 쓸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런 방향성. 물론 일을 다 그만두고 사진만 찍으면서 살기를 결정 내린 키토의 삶에서 어떤 굴곡이 있었는지, 그건 짐작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지만.
입장 시에 '찰칵'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라이브 포토로 사진을 찍어도 괜찮은 전시라고 일러주어, 나는 사진을 몇 장 담았다. 사진들은 대부분 일상과 먼 그림 같았고, 사진에서 그림을 찾다니, 하는 묘한 위화감과 아름답고 여유로운 풍경들에 파묻혀 잠시 현실감을 잊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섹션, 사진을 천을 널듯 널어 두었다. 캔버스에 인쇄된 사진들은 우둘두둘 텍스처를 갖고 있었다. 손대지 마세요, 를 무시하고 손을 대어 보고 싶어질 만큼.
전시의 마지막에는, 관람자가 스스로의 작은 순간을 적어볼 수 있는 체험 섹션이 준비되어 있었다. 같이 준비되어 있는 몽당연필이 귀여웠다. 이때 적은 작은 순간들은 지금, 내 오른쪽 벽에 단정하게 붙어 있다.
알렉스 키토, 오랜만에 본 사진전에서 그에게 얻은 용기와 위로의 메시지는 큰 여운이 되어 다가왔다. 그럼에도 괜찮다. 는 위로는, 역시 어느 순간에서나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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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시안 블러 / 포토샵에 있는 기능으로, 사진을 원하는 정도로 흐릿하게 할 수 있는 기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