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로, 또 같이.

초록 공기 위에서 스몄다가 흩어지는 아름다운 재즈사운드. 자라섬 페스티벌

by Sunyeon 선연


저번 토요일, 잔뜩 흐렸지만 마음만은 맑았던 날.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타임테이블이 가장 빽빽하게 되어 있는 토요일. 얼마 전 보았던 성수 서재패도 좋은 경험이었기에, 이번 관람도 기대를 꽤 했던 것이 사실이다. 성수동 때는 제법 더워서 땡볕 아래서 음악을 들었는데 올해는 흐린 날씨 덕인지, 아주 시원한 날에 가을의 시작인지 여름의 끝인지 모를 계절을 붙잡고, 귀에 자연스레 스미는 소리들을 잡아챌 수 있었다.


행사 시작은 12시. 내가 도착한 시간은, 한시가 조금 덜 되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준비들로 무장한 채로 자라섬으로 걷고 있었다. 긴 행렬을 짐을 들고 걸어가는데, 새삼 자라섬이 참 아름다운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자라섬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게 자라섬의 첫 풍경은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물가 근처에만 가면 마음이 편해지는 나는 흐린 날에도 물가의 풍경들을 두어 장 담았다. 짐은 무거웠지만 마음만은 뜰 것 같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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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먹구름이 낀 하늘도, 조금 쌀쌀한듯한 찬 공기도 사랑스러웠다. 자리를 잡으려 스테이지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잔디 바닥이 전부 젖어 있어 조금 당황했지만, 동시에 어제 비를 보며 관람한 사람들은 얼마나 신났을까, 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참석한 날짜는 페스티벌 개최 중 사람이 가장 많을 것 같은. 2일 차였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올해 22년을 맞는 행사라고 한다. 올해는 3일에 걸쳐 풍성한 라인업이 완성되어 있었고 각국의 다양한 음악들을 들을 수 있도록 테이블이 짜여 있었다. 재즈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은 아니지만 최근 재즈 피아노를 배우고 있어 재즈 리듬에 관심이 많은 나는, 관람 내내 재즈 요소들의 여러 용어들을 혼자 머릿속으로 곱씹어가며 음악을 즐겼다. 루바토, 스윙, freely, funk, 그리고 2-5-1. 같은 용어들. 현란한 재즈 피아노의 독주를 들을 때는, 원래의 악보엔 어떤 근음이 어떤 코드로 자리 잡고 있을지 짐짓 궁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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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은 흐렸다, 맑았다. 해가 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계속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스테이지가 기역자 형태로 되어 있어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연을 의자를 돌리기만 하면 바로 즐길 수 있었다. 모든 아티스트들이 좋았지만, 공연을 즐기며 느낀 것은. 스테이지 위의 모든 음악들이, 각자의 악기, 각 연주자를 위해서 세심하게 설계되어 있고 연주자들 모두 그 부분들을 꼼꼼하고 정확하게, 배려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트럼펫 솔로가 나올 때는 다른 모든 소리들의 조화가 작아지고, 다시 또 커졌다가 드럼 솔로가 들릴 때는 드럼이 돋보일 수 있도록 다른 모든 악기가 소리를 줄이고, 다시 베이스나 기타 등의 솔로가 나오거나 멜로디가 강조되어야 할 때는 그 악기들을 위해 모든 악기들이 볼륨을 줄이거나, 숨을 죽이며 하모니를 만들어 나가는 그 과정.

스테이지의 음악을 즐길 때, 그 음악이 얼마나 노련하고 완벽한 음악인지도 중요하지만, 그것들을 이루는 요소들 중에서 각자가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서로 간의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고 음악에 집중하며 '돋보일 수 있는 요소'를 돋보일 수 있도록 이끌어가는 아티스트들이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음악뿐일까, 사실 우리의 삶도 협업이 필요한 일들 투성이다. 내가 목소리를 내야 할 곳, 조금 줄여야 할 곳. 그리고 어떤 때에 어떤 역할을 하면 되는지. 어디에 어떻게 발을 딛고 서야 하는지, 필요하다면 어느 때에 발을 디뎌 남을 도와야 하는지. 수시간동안 공연을 관람하면서, 나는 표정을 바꾸는 하늘 아래서 하릴없이 이렇게 생각했다. 어디에서든 나도 내 역할을 잘 해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고.


그날 스테이지에 올라온 아티스트들은 모두 노련한 스킬로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나는 마지막 공연까지 추위도 잊고 몸을 신나게 흔들었다. (사실 몸치인건 비밀.) 연주들이 너무 훌륭해서 귀가 즐겁고, 마음 또한 좋았다. 시간이 참 빨리 흘러간다고, 함께 연주를 듣는 짝꿍이 내게 슬쩍 말했을 때,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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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지금, 나는 아직도 그날의 사진을 보며 아직 다 끝나지 않은 음악처럼 더 듣고 싶다는 여운에 빠져 있다. 화려하고 조용한 여운, 지금 내가 서 있을 자리에서 내 역할을 해내다가 또 내년에 더 훌륭하고 따듯한 아티스트들을 만날 수 있기를.


내 첫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은, 이렇게,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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